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선거 시작부터 후보자 추천서 조작 의혹과 후보자 국적 논란에 시달렸던 제33대 경기도의사회 회장 선거가 '무기한 개표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6일 경기도의사회 선거관리위원회는 회관 3층에서 개표소를 마련하고 오후 8시부터 개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개표는 착수도 못한 채 투표용지를 봉인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명 날인을 무효표로 볼 것인지에 대해 선관위와 현병기 후보(기호 2번)의 입장이 엇갈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앞서 선관위는 부정 투표를 막는다는 취지로 우편 투표의 회송용 봉투 뒷면에 본인 인장이나 지장을 날인한 경우만 유효표로 인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 추천서류에 서명을 허용하자 위조·대리·허위서명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선거가 1주일이나 연기됐기 때문에 부정 투표를 막을 최소한의 본인 인증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선관위 측 판단이다.
한부현 후보(기호 1번)는 선관위의 지침에 따른 무효표 규정에 동의한 반면 현병기 후보 측은 "지장을 인정하면서 서명 용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무효표 규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날 이종현 선관위원장은 "개표 전 무효 투표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한부현 후보만 동의했고 현병기 후보는 동의하지 않았다"며 "현병기 후보의 동의서를 계속 기다렸지만 연락이 두절돼 개표를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모든 질문은 현병기 후보에게 물어보라"고 외친 채 개표소를 뛰쳐나가면서부터 선관위원들이 접수된 투표 용지를 봉인하는 등 모든 개표 절차가 중단됐다.
현병기 후보 측은 "의사협회의 선거에서도 서명 투표 용지를 인정한다"며 선관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성종호 위원은 "수십 명에 달하는 도장이 없는 전공의들이 (지장 방식의) 우편 투표를 하려고 했지만 병원 행정부서의 비협조로 못한 것으로 안다"며 "선관위 때문에 서명으로 대신해 보낸 전공의들의 표가 모두 무효처리 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 투표 방식이 있지만 선관위가 이를 제대로 홍보하지도 않아 많은 전공의들이 잘 모르고 있다"며 "선관위가 항목마다 의협과 경기도의사회 선거관리 규정을 선택해서 준용하고, 한부현 후보의 외국 국적을 알리지 않는 등 편파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부현 후보는 서명 날인 불인정이 현병기 후보의 자업자득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부현 후보는 "현병기 후보의 동의서 미제출로 인한 개표 중단에 어이를 상실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서명 날인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현병기 후보의 추천서 조작 의혹 사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병기 후보는 자폭 수준으로 자기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며 "선거에 대한 기준과 규정을 만들기 위해 선관위가 존재하는데 그런 선관위의 지침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부현, 현병기 후보 측 참관인은 개표 연기 소식에도 30여 분 간 자리를 지키다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부른 경찰관도 헛걸음을 하긴 마찬가지.
이날 최종 접수된 우편투표 용지는 844장. 온라인 투표는 459명 신청 중 88%인 403명이 참여했다. 총 유권자 5450명 중에 1247명(22.9%)이 투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