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2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들은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설치·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됐다.
이에 발맞춰 인천광역시는 2013년 10월 인천광역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전국 최초로 광역자치단체 조례에 기초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듬해인 지난해 2월 '인천광역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단장 임준)을 발족했다.
창단 이후 1년 동안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은 ▲인천광역시 공공보건의료정책 비전 제시 ▲지역사회 의료자원 간 효율적 연계시스템 구축 지원 ▲공공보건의료기관 연구 및 기술지원을 통한 역량강화 등의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제는 기존 Top-down(상의하달)식의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이 아닌 지역의 니즈와 상황에 맞는 공공적 개념으로서의 보건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 임준 지원단장(서울의대. 가천대길병원 교수)의 주장이다.
메디칼타임즈는 임준 단장을 직접 만나 우리나라 보건의료서비스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012년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공공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일각에선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흔히들 공공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진주의료원 폐업에 따른 측면이 크다고 하지만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제기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공공의료를 이야기 할 때 물리적으로 공공의료기관만을 생각하다보니 진주의료원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공공보건의료가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된 계기는 건강보험이었다.
지난 1995년 건강보험 통합 이전 지역 가입자와 직장 가입자 간의 형평성이 큰 문제가 됐었다. 이후 건강보험 일원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시작됐다.
의료보험을 갖고 왜 형평성에 대한 논쟁을 하는지, 왜 사람이 사는 지역과 직업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더 전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건강이라는 것을 공공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공공의료란 의료 취약 대상자에 대해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보건소나 시립병원 등 공공의료기관 역시 아주 가난한 사람이 가는 병원이라는 인식이 컸다.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질병도 만성질환으로 패턴이 바뀌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살만해지면서 의료이용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의료비를 개인 돈으로 내자니 부담이 많이 된 것이고 이를 국가와 사회가 사회보장 방식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공적인 가치와 권리로써의 의료보험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의료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개념이 아니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측면에서 건강보험이 우리사회에 들어오고 관심이 커지면서 공공적인 의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1995년이 우리 사회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인식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던 셈이다.
1995년이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의 시발점이었다면 본격적으로 관심에 불을 당기게 된 계기도 있을 것 같다.
의약분업과 의료영리화 문제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의료와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엔 의약분업을 의사와 약사 간 밥그릇 싸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는데 사실 밥그릇 싸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국민 건강권이 중요한 가치라고 논쟁을 하고 실제로 들어보니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고 정부가 수수방관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지난 2004년 의료영리화 문제가 나왔을 때 시민사회단체 등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본격적인 돈벌이 병원 만들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의료에 대한 공공성이 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등장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이후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맞지만 한번에 커진 것이 아니라 1995년부터 관심들이 있어왔고 그 결과물로 공공의료에관한법률이 개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공의료에 대한 시각차는 크다.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보건의료를 바라보는 시각은 많은 갈등 구조 위에 놓여있다.
한쪽에선 보건의료를 공공적이라고 보고 있다. 공공적으로 본다는 것은 공공의료라는 것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필요한 모든 보건의료서비스를 국가와 사회가 공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에서의 보장이나 인프라 확충은 당연히 공공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운영 주체가 공공이냐 민간이냐는 점은 다른 문제다.
외국도 정부가 운영하는 것을 따로 공공의료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퍼블릭 헬스(public health)라고 할 때는 민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민간이 운영하더라도 재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 건지, 누가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의 차원에서 시민이 참여하고 공공재원으로 이뤄진다면 그것이 퍼블릭 헬스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관점이 아니다. 보건의료는 시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고 민간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것을 공공의료기관이 제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공공의료를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구분이 명확한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이 겹쳐져 있다.
지금으로서는 후자가 주도적 관점이다. 정부의 시각은 후자에 가깝고 시민들의 시각은 중간쯤에 있다. 기재부 등 경제부처는 훨씬 전자쪽에, 복지부는 시민 생각보다는 후자쪽이지만 경제부처보다는 전자쪽에 가깝다.
복지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시민이 생각하는 정도로 끌고 와야 변화를 통해 규제들에 다시 손을 대고, 무질서한 민간 시장의 체계를 바로잡고, 형평성에 대한 격차도 해소할 수 있는 의료법 개편 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민간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이 보건의료서비스에서의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맞는 이야기일수도 있고 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건강보험으로 서비스를 받는 부분들은 그 서비스를 민간에서 받든 공공에서 받든 동일한 서비스여야 하는게 맞다. 민간과 공공이 동일한 인건비와 환경 속에서 동일한 진료를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민간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 간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볼 때 모든 민간의료기관에서 공공적인 서비스가 이뤄진다면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의료서비스는 똑같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시립병원은 시범사업 등을 우선 적용하는 정책병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건강보험에서 별도로 지원하지 않는 의료서비스도 공공병원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설립했다. 지자체에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정책지원이나 연구 지원을 담당하는 별도 조직이 필요한 이유는.
사실 보건의료문제는 지역문제로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처럼 중앙정부가 보건문제에 개입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건강증진, 예방사업 등 지역 내 보건의료서비스는 지역 주민의 니즈에 기초해야 한다. 그런데 각 지역주민의 니즈가 같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니즈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접근성에 대한 측면 등을 볼 때도 지역단위로 보건복지 서비스가 제공돼야 하는 게 맞다. 지역의 특성을 연구하고 상황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게 맞다면 당연히 정책연구도 지역단위로 이뤄져야 한다.
물론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나 전국 차원의 질병특성 연구 등에 대한 중앙정부의 연구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지역차원에서의 특성을 연구하고 적절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연구는 진행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Top-down(상의하달) 형식으로 보건의료서비스가 제공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자체 스스로 보건의료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지역의 특성과 지역주민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정책을 연구함으로써 시가 보건소, 의료원의 활동방향을 정하고, 근거를 통해 사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