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의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문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온다.
아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회전목마였다. 표정이 밝아진 아이는 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사실을 잊은 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놀이동산이 아니다.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곳 중 하나인 소아청소년과의원 이야기다.
인천 서구 당하동에 위치한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은 이달말로 개원한 지 꼭 일년이 된다. 일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역 엄마들에게는 구원투수와 같다.
일반적으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생각하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끌고 들어가려는 엄마와 도망가려는 아이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그런데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은 다르다. 끌고 들어가려는 엄마도 없고 문 앞에서 버티는 아이도 없다. 오히려 엄마 손을 놓고 아이가 먼저 들어선다.
아이들이 먼저 뛰어들어가는 소아과, 왜? 재미있으니까!
가장 큰 이유는 놀이동산을 연상케하는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콘셉트 때문이다.
권창규 원장은 "소아청소년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병원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죠.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무서운 데 오는구나, 전에 여기서 코를 뽑았지, 엉덩이를 찔렸지하는 생각을 하고 들어오면 진찰도 잘 안돼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출입문은 놀이동산 회전목마를 연상케한다. 핑크색 띠를 두르고 있는 크고 하얀 기둥은 동그란 회전판을 떠받치고 있고 문 양 옆으론 귀여운 말들을 장식했다.
첫눈에 봐도 놀이동산에나 있음직한 회전목마다. 아이들은 이 문을 들어서면서 '무서운' 병원이라는 생각보단 '재미있는 놀이동산'이라는 생각부터 가진다.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에서 만난 한 엄마는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딸은 5살인데 감기 등 잔병치레가 많아서 소아과를 자주 다니는 편이에요"라며 "아이 둘을 데리고 소아과를 간다는 것은 엄마에게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이 소아과를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아요. 특히 딸은 놀러간다고 생각할 정도에요. 문에 붙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를 정도에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엄마도 "이 소아과에만 오면 아이가 회전목마같은 문 기둥에 올라타려고 해요. 그런데 다른 집 아이들도 그러나봐요. 오죽하면 기둥에 올라타지 말라는 안내문까지 붙였겠어요"라며 웃었다.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엄마들에게 눈도장을 받기까진 세심한 부분까지 환자와 보호자를 배려한 권창규 원장 부부의 노력이 있었다.
권창규 원장은 지난해 2월까지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사였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개원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다.
권창규 원장은 "지난해 3월 31일에 개원했는데 2월말까지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직접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라며 "(놀이동산 콘셉트를)직접 기획한 것은 아니고 전문업체에 의뢰했어요. 2개 업체의 여러 시안 중 고른 콘셉트에요. 원내를 집처럼 꾸민 콘셉트도 있었어요. 부스와 진료실 모두를 집처럼 꾸미로 문패도 다는 콘셉트였죠. 또 다른 시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콘셉트였는데 모두가 소아과에 딱 맞는 콘셉트는 아니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시안 중 소아과에 딱 맞겠다고 판단한 콘셉트를 선정했어요. 아이들이 병원을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야 진찰도 잘 되고 치료도 잘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는 아이들의 작은 전시공간과 온돌 깔린 수유실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또 다른 특징은 '북카페'와 '모유수유실'이다.
상당수의 소아청소년과의원들 역시 북카페와 모유수유실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은 조금 다르다.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북카페는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벽에 붙여준다.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이 장식된 벽을 보면서 기뻐한다. 그리고 다음에 내원해서도 자신의 그림부터 찾는다. '시간 죽이기'식의 북카페가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로 '노는 공간'인 것이다.
모유수유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닥에 온돌을 깔았다는 점이다. 추운 겨울 찬 바람을 맞고 들어온 엄마들과 영아들을 배려한 것.
권창규 원장에 따르면 이런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덕분이다.
권 원장은 "남자 의사들이 신경쓰기 어려운 곳이 북카페랑 모유수유실이에요. 설계원안에서는 북카페와 모유수유실이 작았어요. 북카페 크기를 늘리는 것, 모유수유실에 온돌을 까는 것 모두 아내의 아이디어에요"라고 자랑했다.
그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청소년과를 다니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설계 단계서부터 반영했어요"라며 "제가 기술적 측면에 관여하는 대신 감성적 측면은 아내에게 맡긴 덕분에 아이들과 보호자 모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예쁜 병원을 만들 수 있었어요"라고 강조했다.
'권창규 소아청소년과의원'은 접수데스크도 재미있다. 접수와 계산, 처방전만 주고 받는 단순한 데스크가 아니다. 데스크 뒷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노키오, 돌고래, 마시마로, 눈사람 등의 인형으로 장식하고 가장자리에 환한 전구를 달아 처방전을 받고 나가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과감한 인테리어 투자, 당장 이익 없지만 좋은 진료환경 위해서라면
인테리어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권 원장에 따르면 임대평수는 90평, 실평수 58평 정도다. 인테리어 기간은 한달 정도. 비용은 인테리어에 7800만원(부가세 780만원 별도), 공조시스템에 1100만원이 별도로 들어갔다.
이에 대해 권 원장은 "병원을 개원할 때 빨리 벌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할 생각을 하는 원장과도 있고 한곳에서 계속 진료하려는 원장도 있어요. 저는 후자쪽이에요"라며 "솔직히 인테리어에 많은 투자를 해도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은 없어요. 현재 규모에서 절반만해도 충분히 돌아가요. 인원도 줄여도 되고요. 하지만 되도록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좋은 진료환경을 제공하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테리어보다 중요한 것은 진료. 권창규 원장은 진료에 있어서도 차별화를 추구한다.
권 원장은 "개인병원에서 시스템 측면이나 장비 측면에서 특화를 추구하긴 쉽지 않아요. 개인병원은 1인 기업이기 때문에 원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라며 "저는 밖에 환자가 밀리고 있어도 진료실에 들어온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려고 노력해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만일 밀린다고 진료를 빨리 끝내면 엄마들은 더 서운할 것 같아요. 한시간 기다려서 1분만 진료받고 빨리 나가라고 하면 속이 상할 수 밖에 없겠죠"라며 "기다린 것이 미안해서 설명을 많이 하면 밖에선 그만큼 또 기다리게 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설명을 많이 하는 등 진료과정에서 차별화하려고 노력해요. 엄마들은 걱정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요. 이런 니즈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개원·인테리어 생각한다면 진료과와 환자에 딱 맞는 콘셉트를
그렇다면 개원 후 1년동안 인테리어와 진료 차별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는 어떨까.
권창규 원장에 따르면 3월 현재, 겨울에 비해 환자가 줄긴 했지만 대략 일평균 90여명의 환자를 본다. 이중 15명 정도가 국가필수예방접종.
권창규 원장은 "지난 일년을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개원할 때는 모두가 지금 월급보다 두배는 벌겠지라는 기대를 갖고 시작해요. 그런데 일년동안 해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 왜 개원가가 어렵다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됐어요. 그래도 첫 일년치곤 나쁘지 않았다고 봐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원을 준비하거나 인테리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진료과와 환자에 맞는 콘셉트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 원장은 "개원할 때 원장이 현실적으로 바닥부터 개입할 순 없어요. 여기다 벽을 세우고 저기다 무엇을 만들어주세요라고 요구하긴 쉽지 않죠"라며 "어차피 몇가지 중에 고르는 것이에요.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는 해야 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둘 필요는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제 경우도 사실 몇가지 시안 중 굉장히 깔끔하고 좋은 안이 있었지만 흔해 보였어요. 꼭 소아청소년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 내과 등 모든 과에 어울리는 시안이었어요. 그냥 병원에 어울리는 시안이었던 것이죠"라며 "그런 것을 고르는 것보다는 진료과에 맞는, 환자 눈높이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