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7시 30분 서울의대 교육관. 의과대학 수업이 끝난 시간이지만 서울의대,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생 70여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다.
이날 세미나는 서울대 연건캠퍼스(의대·치대·간호대)연합 동아리 '연건 사회과학학회 움틈'과 경희대 한의과대학 동아리 '한의학정책연구팀'가 공동으로 추진한 것.
최근 정부의 규제 기요틴 발표 이후 의·한의계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는 것과 관련해 예비 의료인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다.
연건 사회과학학회 움틈 조철민 대표(서울의대 본과 3년)는 세미나 시작과 함께 "최근 의사와 한의사가 이익집단의 갈등으로 비춰지고 있다보니 이에 속하지 않은 학생으로서 이 주제에 대해 순수한 시각으로 조망해보고 싶었다"며 취지를 밝혔다.
예비 의료인으로서 이 제도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고 이를 의대 뿐만 아니라 한의대 학생이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워낙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일까. 이날 세미나는 찬반 주장을 소개하는 1부까지만 공개하고, 찬반토론은 비공개로 진행했다.
심지어 세미나 사진은 물론 세미나 발표를 맡은 연자 이름까지도 비공개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행여라도 이번 세미나가 의-한의계 갈등으로 불거질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조철민 대표는 "우리는 세미나 동아리로 여러 주제에 대해 세미나를 진행해왔는데 이번 주제가 워낙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인지 각각 의협, 한의협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면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어 찬반토론에서도 의-한의계 대립각을 세우는 질문은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환자를 위해 허용하자"vs"의학적 근거부터 보완해야"
공개로 진행한 찬반 주장발표에선 의협과 한의협이 주장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는 팽팽한 찬반 대립된 주장이 오갔다.
한의학정책연구팀 대표로 나선 A씨(경희한의대 본과 3년)는 "한의과에서 고전의학 및 사상의학만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해부학, 영상진단 등 현대과학 과목도 함께 배우기 때문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근거는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엇보다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의료기기를 허용해야 한다"면서 "의료비 증가를 방지할 수 있고 한의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씨는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1차 의료기관으로서 치료가능한 환자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령, 현대 의료기기로 임신여부를 판단하고 골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에 맞게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 조치할 수 있고, 진단 또한 보다 정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동아리 움틈 대표로 나선 B씨(서울의대 본과 3년)는 조목조목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선 안되는 이유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의사가 맥을 짚는다고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없듯이 한의사가 엑스레이 등 영상검사를 한다고 정확한 진단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그는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그에 합당한 의학적 근거를 더 쌓아야 한다"면서 "설령 근거를 쌓아다고 해도 과잉검사를 통제할 만한 시스템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성 허용할 순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과대학은 교과과정 내내 영상진단을 다루지만 한의대는 그렇지 않는데 만약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교육과정도 더 보완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