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6년 전 접촉성피부염으로 한의원을 찾아 "양약을 끊고 한약을 먹으라"는 한의사 말만 무조건 믿었다가 스물한 살의 딸을 가슴에 묻은 소 모 씨.
그는 지루한 법정싸움을 하는 내내 소송 상대인 한의사에게서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소 씨는 한의사를 상대로 민사, 형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고 지난달 12일과 24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송 결과 한의사는 소 씨 가족에게 2억6000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재판부는 한의사에게 책임이 80%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형사 처벌은 면하게 됐다.
소 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6년 동안 한의사는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왔을 때만 연락을 취해왔다. 집에 찾아와서도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자신도 힘들다는 소리만 했다. 나도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 한의사가 반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라고 하소연했다.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환자나 보호자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의료진의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한다. 특히 환자가 죽음에까지 이른다면 남겨진 유족은 의료진의 진심에 대한 갈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딸을 잃은 소 씨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소 씨는 한의사의 진심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억울함만 더 커졌다.
소 씨의 사연은 한약과 약의 간 독성을 놓고 의료계와 대한한의사협회의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한의협은 언론보도로 소 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재판부의 판결이 유감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한의사 한 사람의 문제이며 판결문의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개인적인 소송이 집단의 대립으로 확산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 씨는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어디에도 의료사고 피해자를 생각하는 '진심'은 보이지 않았다.
한의협은 보도자료에서 한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는 데만 급급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그 흔한 위로의 말도 없었다.
의료계 역시 한의사를 비난하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약의 간 독성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상황의 시작은 '의료사고로 딸을 잃은 소 씨의 사연'이다. 의료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의사와 환자가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을 공유하려는 마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사고 당사자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먼저 생기는 따뜻한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