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무진 회장의 인선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임기 시작 열흘도 지나지 않아 회장 불신임 목소리까지 등장했으니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선 논란은 이른 바 좌파 꼬리표가 붙은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를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으로 임명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논란은 회비 미납 주장이나 항의서한, 인사사고 설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지만 정작 인사권자인 추무진 회장은 '입'을 닫고 있다. 도대체 왜 이진석이여야만 하는지, 의협의 고위 관계자들 역시 기자에게 되물을 정도다.
추무진 회장은 왜 이진석 교수를 임명했을까? 먼저 인선 논란이 불거지던 당시 추무진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의협은 의사의 권익을 지키는 이익단체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공익단체다. 이 둘의 절충점을 찾기위해 전략적으로 이진석 교수를 영입했다."
이진석 실장의 활용 방안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임명의 배경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공공의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진석 교수를 영입해 공공의료 정책 추진의 반대 논리를 개발하거나, 혹은 의사-국민이 한 편이 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겠다는 취지다.
인선 논란 전부터 이미 힌트는 여러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추무진 회장의 취임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의사와 국민이 하나 되는 의료제도를 만듭시다."
추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 의협은 의사의 권익을 지키는 이익단체이지만 동시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공익단체다"며 "좋은 의료제도는 의사의 권익과 사회의 공익을 일치시켜주는 제도"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의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잡아, 의사와 국민이 한 편이 될 수 있는 좋은 의료제도를 만드는데 의협이 앞장서겠다는 게 그의 공식 언급이었으니 사실상 의도적으로 발탁한 셈이다.
한마디로 이익단체 역할에 비해 빈약했던 공익단체로의 성격을 부각시키겠다는 것. 인사사고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 졌으니 질문을 바꿔보겠다. 왜 이진석이냐가 아니라 왜 지금 공공단체냐고.
노환규 전 회장에게 민심 이반이 일어난 것도 사실 회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급격한 프레임 변화가 한몫했다.
노 전 회장의 착한 손 운동 전개나 보건의료노조와의 연대 투쟁, 진주의료원 방문, 야권과의 연대 등은 대부분 "의사들이 국민의 편에 서야 국민들이 의료계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 준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
국회와 정치권을 움직일 실질적인 힘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설정. 실익을 위해서는 이익단체로의 면모보다는 공익단체로서의 성격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는 의도적인 설정들이 작용했지만 회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추무진 회장은 어떨까.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예견된 실패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의협의 급격한 프레임 변화를 회원들이 수용할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 이번 사태에 '왜 지금'이라는 질문을 덧붙이면 좀 더 명확해진다.
급작스런 공익단체로의 부각만을 내세웠지, 왜 하필 '지금' 리베이트 쌍벌제 행정처분, 규제 기요틴, 원격의료 시범사업 결과 공개 등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공익단체를 표방하고 나섰냐는 대목에서는 납득할 만한 해명도 설득도 없다.
최근 추무진 회장은 네팔 지진 피해 구호 활동 내역을 공개하면서 '공익단체'로서의 성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박수갈채가 아닌 "리베이트 쌍벌제 대책을 내놓으라"는 모 회원의 1인 시위였다. 공익단체 성격의 부각이 회원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최소한의 설명이나 설득 작업 조차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과연 추무진 회장은 왜 이진석 교수를 임명했을까? 아니, 왜 하필 '지금' 공익단체를 표방하고 나왔을까?
논란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지만 정작 추무진 회장은 '입'을 닫았다. 의료의 백년지대계를 내다본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자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