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 3주. 경기도 남양주 A산부인과 의원 원무과장은 외래에서 "원장 나오라"며 소리치는 한 보호자를 제지하다 맞았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 보호자가 뿔난 이유는 "죽을 먹어도 된다고 해서 외부에서 죽을 사 왔는데, 병원 죽을 먹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의원 측은 112에 업무방해 및 폭행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의원에 도착해 현장을 정리해야 할 경찰의 태도를 보고 A산부인과의원 원장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환자 보호자가 직원을 폭행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음에도 폭행, 업무방해 등으로 현행범 처리를 하지도 않았고, 임의동행만 했습니다."
그렇게 경찰과 함께 나간 이 보호자는 30분 후 다시 의원을 찾아와서 소리를 치며 원장을 찾기 시작했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이 보호자가 다시 찾아와서 위협했습니다. 메스를 잡는 손이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다시 112에 신고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죠. 하지만 출동한 경찰들은 인적 사항을 묻지도 않았고, 잘 해결하셨네요라며 돌아갔습니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환자 보호자는 5시간여 동안 의료진, 병원 직원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병원비까지 내지 않고 집으로 갔다.
이 원장은 "진료실 폭행 방지 법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경찰이 사법권을 전혀 발동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으면 누가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A산부인과의 의원의 사연을 들은 경기도의사회 현병기 회장은 10일 이번 폭행 사건 관할인 남양주경찰서를 찾아 안정적인 진료실 환경 만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찰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경기도의사회가 숙원 사업으로 추진해오던 '진료실 폭행 방지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만 남겨둔 상황에서 경찰의 허술한 대처는 법의 의미마저 퇴색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의사회는 이전 집행부 때부터 진료실 폭행 방지법 제정과 국회 통과를 주도해왔다. 현병기 회장은 회장 선거 당시 진료실 폭행 방지에 앞장서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현 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병의원 내 폭력은 안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진료를 못하는 상황에까지 몰리면 의료진뿐만 아니라 환자에게까지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순 폭력과 진료방해의 폭력은 성격이 명백히 다르다. 피해자도 오죽하면 그랬겠냐라는 식의 양비론적 접근보다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며 "진료실 폭행 방지 문화 조성을 위해 회원과 경찰청장과의 간담회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측 "출동했을 때는 이미 상황 종료"
경기도의사회의 주장에 경찰 측은 수수방관한 것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경기도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서 체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미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며 "CCTV를 확인해도 환자 보호자가 병원 직원을 밀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화답을 곁들였다.
남양주경찰서 관계자는 "매주 초 남양주 지역 15개 파출소장이 모여 회의를 한다. 이 자리에서 진료실 폭행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등에 대해 특별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