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씨 들어오세요."
지난 16일 오전 9시 안과 외래.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이 무색하게 접수하고 의자에 앉기 무섭게 외래 간호사가 환자 이름을 불렀다.
평소 서울대병원 안과는 외래 예약을 하면 적어도 3~4개월 대기해야 진료가 가능할 정도로 늘 붐비지만 메르스 여파 때문인지 한산했다.
외래 대기실 의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으며 외래 진료 명단은 널널했다. 평소 15분 간격에 10명 가까이 진료 예약이 잡혀있던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특히 안과질환은 크게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진료를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의료진들의 설명이다.
외래 대기가 길기로 악명이 높은 서울대 어린이병원도 메르스의 공포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그나마 소아청소년과 외래 대기실에는 소아환자가 눈에 띄었지만 소아안과, 소아정형 등 진료실 앞의 대기환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썰렁했다.
소아안과는 외래진료를 받으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늘 환자가 넘쳤지만 이날 대기실은 조용했다.
어린이병원 응급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놓인 의자에도 늘 환자와 보호자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한두명만이 걸터 앉아있었다.
어린이병원 김석화 병원장(소아성형외과)은 "평소 하루 평균 외래 환자 수가 1200명 수준인데 400명까지 감소했다"며 "예약환자도 안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르스에 민감한 소아환자의 엄마들이 병원 출입하는 것을 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봤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했던 내과 외래도 눈에 띄게 환자가 감소했다.
가 지난 2013년 내과 외래 대기실 상황을 취재했을 때만 해도 대기 의자가 부족해 일부는 서서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심지어 진료실에 들어간 환자는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내과 환자 대기실의 절반은 비어있었으며 채혈실도 대기없이 바로바로 검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서울대병원 노조 파업 당시에도 북적이던 진료 접수창구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대기 의자는 텅텅 비었으며 내원 환자의 접수는 바로바로 이뤄졌다.
이날 오후 2시. 혹시나 이른 오전인 관계로 환자 수가 적게 나타난 게 아닐까 싶어 다시 찾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안과 대기실은 여전히 텅텅 비어있었으며 어린이병원도 공휴일로 착각할 정도였다.
내과와 이비인후과 외래 진료실 대기의자에는 3~4명의 환자만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진료 대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진료실과 대기실 중간에 빈 공간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정부가와 의료계가 수십년째 대학병원의 외래 환자수 감소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도 안되던 것을 메르스에 대한 공포심이 단박에 해결해버렸다.
병원 건물 입구마다 안내문…그래도 환자는 불안
서울대병원은 지난 15일 국민안심병원을 신청, 건물 출입구마다 메르스 의심환자는 격리진료소에서 검사 후 진료받으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써붙였다.
외래 간호사는 접수하면서 "혹시 2주 내외에 저희 병원 이외에 다른 병원에 간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며 메르스 전파 가능성을 거듭 확인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온 환자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환자 보호자가 환자의 상태 등을 작성해 메르스 의심 여부를 체크했다. 내원 환자 모두를 메르스 환자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환자들의 불안감을 100% 해소해주진 못했다.
"안심병원이라 괜찮대. 걱정마" "혹시나 싶어서 마스크 끼고 왔어. 빨리 진료만 받고 나가야지"
이날 서울대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은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진료과를 불문하고 내원 환자와 환자 보호자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으며 일부 마스크를 끼지 않은 환자들은 스스로 입을 가리고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어떤 환자들 스스로 복도를 오가며 서로간에 접촉이 없도록 조심했다.
환자들은 불과 몇일 만에 강력한 감염관리 교육을 받은 듯 움직였다.
서울대병원 한 의료진은 "안심병원을 떠나 감염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음에도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병원을 기피하는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라며 "지나친 공포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