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드럼 광장을 돌아본 우리 일행은 흔히 블루 모스크라고 부르는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히포드럼 광장으로 통하는 자그마한 문이 정문이라고 한다. 정문 위쪽으로 ‘ㅅ’자 모양으로 쇠사슬이 걸려 있다. 어떤 고관대작도 걸어서 들어갈 수 없었던 이 문을 오직 술탄만은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술탄이라고 해도 알라의 성전에 들어가면서 고개를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걸어놓았던 것이리라.
정문을 지나면 널찍한 내정이 나온다. 이곳에는 샤드르반이라고 하는 분수대가 있고, 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전에 얼굴과 손발을 씻을 수 있도록 수도시설을 갖춘 정자가 있다. 정문에서 계단을 오르면 모스크 안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다.
하지만 이 문은 무슬림만이 통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른편으로 돌아서 일반인이 출입하는 남쪽 출입구로 이동한 것이 8시. 입장은 오전 8시 반 부터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줄을 서느라고 시간을 버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날 아침 5시에 우리를 깨운 것이었다. 실제로 이스탄불 항구에 유럽에서 오는 유람선이 입항하는 날에는 모든 관광지에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유람선 한 척이 실어오는 관광객이 보통 수천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날 우리는 거의 선두에 서서 모스크에 입장했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의 맞은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는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1616년 완공되었다. 아흐메트1세 치세의 오스만제국은 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1606년 11월 6일, 술탄은 합스부르크왕가가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제국과 13년간에 걸쳐 지루하게 이어져오던 전쟁을 마무리하는 지트바토르크(Zsitvatorok)협정을 맺었다. 오스만제국이 유럽에서의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못한 첫 번째 사례였다.
자존심이 상한 술탄은 알라께 모스크를 바쳐 위안을 삼고 오스만제국의 위용을 널리 알리고자 모스크의 건립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유럽에 대한 우위를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아야 소피아와 마주보는 위치를 선정한 것이리라. 이 장소는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황제의 궁전과 원형경기장의 관중석이 있던 자리로 아흐메트1세 무렵에는 정부고관들의 대저택들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저택들을 사들여야만 했다. 모스크의 남쪽 부분은 비잔틴궁전의 기초와 지하실 아치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1)
건축은 알바니아에서 팔려온 센테프카르 메흐메드 아가(Sentefkar Memed Aga)가 맡았다. 그는 354개의 크고 작은 돔들을 4단으로 배치하여 올린 다음, 마지막 네 개의 작은 돔 위에 에 직경 27.5m의 커다란 중앙 돔을 올렸다. 거대한 중앙돔이 차곡차곡 쌓인 수많은 작은 돔 위에 얹혀 있는 형태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작은 돔들은 각각의 아치 위에 올려졌고 거대한 중앙 돔은 역시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돔 위에는 황금색 장식을 달았고 맨 꼭대기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별과 초승달을 얹었다.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의 웅장한 외관에 더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섯 개의 미나렛이다.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가 다른 모스크보다 많은 6개의 미나렛을 가지게 된 배경은 이렇다. 술탄은 모스크가 아야 소피아를 능가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모든 미나렛을 황금으로 짓도록 명령했다. 문제는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술탄의 명령에 따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명령을 어기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건축가는 잘 알았을 것이다. 결국 건축가는 꾀를 내어 황금(알튼, altin)과 숫자 여섯(알트, alti)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하여 여섯 개의 미나렛을 세웠다는 것이다. 사정을 모르지 않았던 술탄은 건축가를 용서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 법이다. 모스크에 세워진 미나렛은 후원자의 지위에 따라서 숫자가 정해지는 법인데, 당시만 해도 메카에 있는 카바의 모스크만이 여섯 개의 미나렛을 가지고 있었다.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가 여섯의 미나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슬람세계에 알려지자 술탄이 신성모독을 한 것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결국 아흐메드 1세는 카바의 모스크에 일곱 번째 미나렛을 세우는 비용을 내놓고서야 비난을 무마할 수 있었다.
기왕 미나렛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용도에 대하여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흔히 미나렛은 기도시간을 알리는 장소라고 설명된다. 무슬림은 해뜨기 한 시간 반부터 해 뜰 때까지 한 번, 정오를 지나 15분쯤에 한 번, 정오가 3시간쯤 지난 뒤에 한 번, 해가 진 뒤 5분에서 한 시간 사이에 한 번, 잠들기 전에 한 번, 모두 다섯 번 기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 시간을 기억하지 않아도 무아진이라고 하는 사람이 미나렛에 올라서 아잔을 불러 기도시간을 알린다는 것이다.(1)
요즈음 모스크에는 대형 스피커가 무아진을 대신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도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한다. 높이 세운 미나렛은 평지에서도 먼데서 잘 보였기 때문에 모스크의 위치를 알리는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미나렛은 압바스왕조 무렵 성소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하여 세우기 시작한 것이며, 그 무렵에는 기도를 알리는 공간은 모스크의 현관이나 지붕에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미나렛을 두지 않는 이슬람 공동체도 있었다고 한다.(2)
시간이 되자 대기선을 막았던 줄이 내려지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이슬람성전에 입장하려면 여성들은 머리를 감싸야하고, 무릎이 나온 옷을 입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의상을 갖추지 못한 입장객을 위하여 대기하는 장소에서 스카프와 긴 망토를 빌려준다. 복장을 갖추어 내부에 들어서면 기도실의 문 앞에서 나누어주는 비닐봉지에 신발을 벗어 담고 나서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신발을 벗어서인지 바닥에 깔려 있는 붉은 빛 카펫의 촉감이 참 좋다.
머리 위로 나지막하게 걸려 있는 백열전구의 불빛과는 다른 환한 빛이 천장으로부터 쏟아져 내린다. 돔을 비롯하여 벽에 있는 260개의 유리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자연광이다. 유리창들은 푸른빛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고, 모스크의 내부에는 이즈닉에서 만들어진 약 21,000개의 파란색 타일이 장식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를 블루 모스크라고 부르는 이유이다.(3)
널따란 성전 안에 세워진 네 개의 거대한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코끼리 다리라고도 부르는 직경 5m가 넘는 이 기둥들은 중앙돔의 하중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현란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눈길을 끈다. 벽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타일에는 오스만터키 최고의 서예가인 세이드 카심 구바리(Seyyid Kasim Gubari)의 글씨라고 한다. 그리고 원형 판 위에 적힌 칼리프의 이름과 쿠란의 구절들은 17세기 서예가 아메틀리 카심 구바리(Ametli Kasim Gubari)의 글씨라고 한다.
처음 입장했을 때 한 남자가 남쪽 미흐랍 앞에 차분하게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내부를 구경하는 사이에도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와 미흐랍 앞에 절을 하고 앉아 예배를 드린다. 이 미흐랍은 최상품의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메카의 카바에서 가져온 신성한 검은 돌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윽고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이 늘어나고 외부인을 위한 공간도 가이드를 따라 들어선 관광객들로 채워져 간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카펫을 청소하는 소리,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건한 모습을 지키고 있어 놀라웠다. 그런 모습을 보려니 차마 소란을 떨 수가 없다. 저 남자는 무엇을 저렇게 간절하게 빌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결국 기도하는 무슬림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 같아 적당한 짬을 보아 모스크를 나선다.
참고자료:
(1) 유재원 지음.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68-75쪽, 책문, 2010년
(2) 조너선 블룸과 셰일라 블레어 지음. 이슬람 미술 41쪽, 한길아트, 2003년
(3) 위키피디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