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용두사미(龍頭蛇尾)·유명무실(有名無實)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간납사(구매대행업체) 철폐’ 기치를 내걸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이하 협회) 내 꾸려진 TF팀 첫 회의가 열린 지난 8월 27일 직후만 하더라도 말이다.
앞서 7월 협회는 “수행 업무에 비해 과도한 간납수수료 책정과 높은 마진을 취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만든 간납사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간납사 완전 철폐를 주장하고 나섰다.
간납사 폐해 개선과 대책마련을 위한 후속조치로 구성된 TF팀은 하지만 첫 회의부터 삐걱거렸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TF팀이 꾸려지고 열린 첫 회의였던 만큼 자료를 준비하거나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진 않았다”며 “회원사들의 의견을 듣는 브레인스토밍 수준의 자리였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첫 회의임을 감안하더라도 참석자 간 의견 교류는 거의 없었고 TF팀의 향후 추진방향과 대응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없었다”며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별다른 소득 없이 첫 회의가 끝난 이후 한 달 넘게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TF팀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성급한 판단도 내렸다.
과거 업계가 간납사 문제를 공론화하려다 꼬리를 내린 것처럼 이번 TF팀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아 흐지부지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새어나온 것.
하지만 TF팀은 지난 6일 2차 회의를 통해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증명했다.
6일 회의에 참석한 업체 관계자는 “1차 회의 때와는 달리 구체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며 “참석자 모두 간납사 철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회의에 참여해 향후 TF팀 추진방안을 수립했다”고 전했다.
자리를 함께 한 또 다른 다국적기업 임원 역시 “1차 회의 때에는 참석자들이 별다른 의견이 없어 아무런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아 크게 실망했었다”며 “하지만 2차 회의에서는 모두가 간납사 폐해에 대한 문제인식을 재확인하고 앞으로의 TF팀 활동방향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2차 회의에서는 간납사 폐해를 진단하고 그에 따른 개선방안 및 TF팀 추진방향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우선 간납사 폐해로는 일부 공급업체와 간납사 간 유착을 통해 치료재료·장비를 고가로 구입하거나 특수 관계인의 재단직영 간납사 설립으로 발생하는 리베이트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약 12개월 이상 결제 기간 ▲채권에 대한 담보 미제공 ▲가납재고 요구로 인한 부담 ▲강압적인 높은 할인율 요구 ▲병원 외 도매창고 이용 강제 ▲주문 발주 수수료 강제청구 ▲세금계산서 강제 발행 ▲복잡한 서류 및 타사 자료 요구 등이 업계 피해로 진단됐다.
TF팀은 이 같은 피해 근절을 위한 여러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먼저 특수관계인의 재단직영 간납사 설립과 관련해 도매상이 의료기관 및 약국과 특수 관계가 있는 경우 판매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약사법 제47조(의약품 등의 판매질서) 제4항을 확대 적용하는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와 함께 대정부 요청사항으로 ▲권장대금 지급기간 설정 ▲권장기간 이상일 경우 담보 제공 ▲가납재고 구매 ▲구매물류업 규정 설정 ▲공정거래규약 설정 등을 고려키로 했다.
특히 TF팀 2차 회의에서는 간납사 문제 해결을 위한 세 가지 추진계획안을 도출한 것은 물론 TF팀 참여자 명단을 최종 확정한데 이어 별도 ‘실무단’까지 구성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2차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TF팀은 논의를 통해 공정위·복지부 등 유권해석을 기반으로 ‘간납사 전면 철폐’, 식약처 등에 관련 법률 제안을 토대로 ‘간납사 제도권 수용’, ‘간납사와 협회 간 협의를 통한 상생안 마련’ 등 세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키로 했다.
TF팀 한 관계자는 “2차 회의를 통해 큰 틀에서의 추진계획안이 수립됐고 참여자 명단까지 최종 확정한 만큼 간납사 철폐를 위한 TF팀 활동에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간납사로 인한 의료기기업계 피해사례와 실태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왔다”며 “TF팀 내 별도 실무단이 업체들의 피해사례를 수집해 복지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