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독감 등 각종 예방접종을 싸게 하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예방접종 시즌을 맞아 검색을 하던 중 덤핑 접종이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전화한 것이다. 아무리 검색해도 해당 의원을 찾지 못하겠다며 의원 이름이 뭐냐는 게 주 내용이었다. 기사 내용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독감 접종 시장의 어두운 면을 그린 것인데, 정작 소비자는 기사 내용보다 익명 처리한 그 곳이 어디냐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한 사람은 아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늘어놨다. 50대의 한 남성은, 자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아내의 나이는 몇 살인지까지 말하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예방접종이라도 싼값에 맞아야겠다고 호소했다. 매년 싼 값에 독감주사를 맞았는데 기사에 나온 의원이 더 싸단다. 기자가 외근을 나가 있는 동안 사무실로도 덤핑 의원이 어디 있는지 묻는 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독감 예방접종만 예를 들어보면 일선 개원가의 독감 접종비는 3만~4만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조금 싸다 싶으면 2만5000원 선이다. 개원가는 약 1만4000원 선에서 약을 구입한 후 환자에게 2~3배의 가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덤핑 의원들의 예방 접종비는 1만3000~1만8000원 수준.
가격이 비슷비슷한 상황에서 더 싼 곳이 나타나면 소비자는 환호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같은 주사를 더 싼값에 맞았다는 뿌듯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가격 덤핑이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 논리에 따라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한다는 건데 왜 문제라고 하는 걸까.
덤핑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은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한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애덤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외부 간섭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외적의 방어, 사회 질서의 유지, 공공 시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일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즉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적어도 출발선은 같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보통 덤핑을 하는 곳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산하 가족보건의원, 의료생활협동조합 의원들이 주를 이룬다. 정부 산하 기관인만큼 가족보건의원은 매년 운영 예산이 책정돼 있다. 의료생협도 각종 세금을 공제받고 있다. 그런 그들이 싸게 백신을 사서 싸게 놓으면 수익의 크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낮은 가격으로 환자가 몰리게 한 후 다른 비급여 의료 행위를 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다.
결국 출발선부터 다른 이들의 덤핑 때문에 시장의 정상적인 이윤창출이나 성장이 방해받는 것이다.
"어디 의원은 싸게 받는데 여긴 왜 이렇게 비싸냐"는 환자의 민원으로 환자-의사의 관계를 깨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예방접종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라도 덤핑은 더 피해야 한다. 예방접종 환자가 몰려들면 예방접종 후 사후관리라든지 백신 보관 등의 기본적인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이는 백신의 목적인 질병 예방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예방접종 덤핑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만큼 해결책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가장 큰 답이 아닐까 한다. "(덤핑은) 공정한 거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다 같은 동료 의산데 어떻게 그러냐"라는 한 내과 개원의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