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우리는 우치히사르(Uçhisar)로 이동했다. 우리 가이드는 이곳이 기독교가 공인된 다음 기독교인들이 지하도시에서 올라와 살던 곳으로 비둘기를 많이 길렀다고 설명했다. 비둘기는 전서구로 활용했고 그 똥은 프레스코화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더해서 고기는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곳에서 여행사 상품으로 가는 여행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치히사르 지역은 초기 기독교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유재원의 에서 그 의미를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 특히 우치히사르 부근에 있는 괴레메(Göreme)에는 카파도키아의 세 성인들이 세운 수도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모여 있다.
이들 교회에는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틴제국을 물리친 셀주크투르크가 이 지역을 지배할 당시 이곳으로 피신한 기독교인들이 신약성서의 주제들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볼만하다는데, 우리는 구경은커녕 설명도 듣지 못했다.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동굴교회와 수도원이 1천여 개에 이르고 성화가 있는 교회도 150여개나 된다고 한다.
가이드가 따로 설명한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우치히사르를 건너다 볼 수 있는 아우즐라르 언덕이 아닌가 싶다. 건너 보이는 우치히사르는 그리 높지 않은 뾰족한 모습의 돌산이다. 야트막한 집들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로 작은 돌산들이 서 있다.
그런데 크고 작은 돌산에는 마치 벌집모양으로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 이 구멍들은 동굴집들이고 산속으로 뚫린 터널을 통하여 연결되고 있다고 하니 산전체가 마치 개미집처럼 생겼을 것 같다. 이곳은 히타이트제국 시절부터 성으로 쓰였다고 한다. 우치히사르에 동굴집을 지은 것은 이 지역에 나무가 귀했고, 응회암지대라서 동굴을 파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역사는 사람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히타이트제국 이전인 기원전 1900년 아시리아 상인들이 무역을 하기 위하여 카룸이라는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기원전 1700년부터 1200년까지 히타이트제국 시대를 거쳐 기원전 6세기에는 리디아왕국에 속했다가 페르시아로 넘어갔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카타파투카(Katapatuuka)'라고 불렀고, 여기에서 카파도키아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멸망 이후에는 이 지역을 노리는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사이에서 부대끼면서 멸망과 독립을 반복하다가 기원 17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카파도키아에 흩어져 있는 동굴과 지하도시는 로마의 박해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몰려들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수도사들이 모여들어 많은 수도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수도사들 가운데는 ‘성 대 바실리오스(Hogios Basileios ho Megas)’와 그 동생인 '니사의 그리고리오스(Hagios Gregorios Nysses)', 그리고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Hagios Gregorios Nazianos)' 등 세 사람은 카파도키아의 세 성인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의 교리논쟁에서 ‘성 삼위일체’가 정통교리로 확립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1) 카파도키아의 동굴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와는 다른 목적으로 세워졌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4세기경 성 바질이 이집트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에서 시작된 수도원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불교에서 수도 목적으로 탱화를 그리는 것처럼, 카파도키아의 동굴교회에서 수도하던 초기 기독교도들이 성서에 담긴 이야기를 주제로 성화를 그렸을 것이라는 설명이 쉽게 와 닿는 듯하다.(2)
이곳에서 그 유명한 나자르본죽(Nazar Boncuk)으로 뒤덮인 나무를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이를 악마의 눈이라고 한다는데, 터키사람들은 오히려 악귀의 재앙을 막는 부적으로 사용한다. 터키에는 흔히 사팔뜨기라고 하는 사시환자가 많은데 사시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신혼부부의 방에 걸어두던 부적이었다고 한다.
우치히사르를 겉핥기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일별하고는 우리는 일단 호텔에 들었다. 짐을 풀고는 바로 선택관광상품인 지프투어에 나섰다. 지금까지는 신이 만들어놓은 예술품 카파도키아의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면 이제는 지프를 타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선사시대에 있었던 에르지에스산과 하산산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휴화산들이다. 화산의 분출로 화산재가 쏟아지고, 그 위로 용암이 흘러내렸다. 화산재가 굳어진 응회암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씻겨 내리면서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삭막해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에 있는 배드랜드를 떠올렸다. 삭막한 풍경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본격 지프사파리에 나서기 전에 들른 장미계곡(Rose Valley)은 해질 무렵에 석양이 암벽에 비치면 빨간 장미의 빛깔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일몰 구경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지프랠리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일몰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해야 했다.
카파도키아의 지프사파리는 자동차랠리에 나서는 레이서출신들이 운전하는 지프로 야생의 카파도키아를 돌아보는 상품이다. 아내와 함께 아주 잘생긴 터키청년이 운전하는 지프에 올라탔다. 우리 차에는 일행 가운데 제일 어린 남매가 동승했는데, 이 친구들이 뒷자리에 냉큼 타는 바람에 필자가 앞자리에 타게 되었다. 호텔을 나서면서 운전하는 친구는 사파리의 분위기를 예고하듯 급제동을 걸었고, 순간 지프는 요란스럽게 출렁거려 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철렁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카파도키아의 계곡에 들어서면서 도로는 지프가 겨우 지날 만큼 좁았고, 때로는 급커브를 만나기도 했다. 앞차가 가까이 달릴 때는 창을 가리는 자욱한 흙먼지 때문에 길이 아예 보이지 않는데도 막무가내로 밟아댔다. 재미있는 것은 타고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소리를 지를수록 운전하는 친구는 웃음을 날리며 묘기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었다. 중간에 지프를 세우고 옛날 이 계곡에 살던 사람들의 집을 돌아보기도 한다. 지프 사파리의 마지막은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예배를 보던 교회 앞마당에서 벌인 샴페인 파티였다. 죽음의 랠리에서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였을까? 샴페인잔에 수고한 운전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얼만가의 지폐를 담아서 잔을 돌려주면 된다.
앞차가 쏟아내는 먼지를 얼마나 마셨는지 숙소에 들어갔을 때는 목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가지고 간 목 스프레이를 뿌렸더니 다행히다음 날 아침에는 따끔거리는 증상이 없어졌다. 병리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카파도키아의 중앙지역에서 복강내 중피종(peritoneal mesothelioma)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전체 사망의 절반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서는 놀랐다. 중피종을 일으키는 석면(asbestos)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에리오나이트(erionite)가 이 지역에 흔하다는 것이다.(3) 그렇다면 지프를 타고 달리는 동안 마신 먼지 속에 에리오나이트가 들어있었을 터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참고자료
(1) 유재원 지음.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268-282쪽, 책문, 2010년
(2) 이희철 지음. 터키 75쪽, 리수, 2007년
(3) Wikepedia. Cappadoc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