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덴폭포는 해안절벽을 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부두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도 배로 왕복하는데는 1시간 반 가량 걸렸다. 이 항해도 선택관광상품이었는데, 선택관광상품을 선택하지 않은 일행은 부두에서 알아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시간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곤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택관광을 하는 일행 역시 정규관광에서 빠지면 안되기 때문에 이 시간에 다른 일정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선택관광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편성하는 여행사 상품은 문제가 있다고 해야 겠다.
이번 터키 여행에서는 카파도키아에서의 지프사파리, 열기구탑승 그리고 민속춤공연, 안탈리아에서 유람선탑승, 이스탄불에서의 야간투어와 돌마바흐체궁전 관광 등 6건의 선택관광과 정규편성이 아닌 파묵칼레에서의 저녁식사까지 포함하여 선택상품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일정이 만만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끼어 넣은 쇼핑까지 치면 정작 보아야 할 유적지나 관광명소는 간략한 설명으로 때우거나 아예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사 상품을 고를 때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유람선에서 내려서는 높이가 30여m나 되는 절벽을 올라가야 한다. 절벽에는 로마시대에 쌓았고, 비잔틴제국의 마누엘 1세 콤니누스가 보수했다는 성벽이 있다. 성벽 사이에 놓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칼레이치 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칼레이치 구시가지에서 오래된 시계탑을 볼 수 있다. 오스만제국의 334대 술탄인 압뒬하미드2세 때 세운 것으로 안탈리아시의 명물이자 만남의 장소라고 한다. 탑의 몸통과 윗부분이 달라 보이는 것은 1942년에 불어 닥친 폭풍우로 윗부분이 무너지는 바람에 1945년에 보수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시대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미로를 따라 하드리아누스문으로 향했다. 카라알리올루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칼레이치 구시가지에는 무너진 로마시대의 성벽과 쏟아져 내릴 듯한 빨간 지붕이 위태롭게 보이는 집들이 섞여 있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칼레이치 구역의 골목에 들어서면 지금도 탄탄한 성벽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의 집들도 복원되어 호텔, 팬션, 선물가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방치되어 부서진 채로 남아 있는 건물들도 가끔씩 만날 수 있다. 로마시대의 집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슬람 전통가옥도 섞여 있다.
복잡하게 얽힌 미로를 따라 걷다 보면 칼레이치의 입구에 서 있는 하드리아누스문에 이른다. 로마시대 안탈리아를 둘러싼 성벽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하드리아누스문이 가장 컸고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았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문은 서기 130년에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이 지방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이 문을 지나 아스펜도스로 간 시바의 여왕 벨키스(Sultana Belkis)는 솔로몬왕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바의 여왕과 교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솔로몬왕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으로 기원전 971년부터 기원전 931년까지 이스라엘민족을 다스렸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시바의 여왕이 하드리아누스 문을 통과하여 솔로몬왕을 만났다면 솔로몬왕은 적어도 단순하게 계산해도 천년 이상을 살았어야 한다.(1) 결국 전설은 전설인 것이다.
세 개의 아치로 된 하드리아누스문에서는 정간으로 장식된 천정과 아치 사이의 대리석 기둥 역시 볼만하다. 문 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가족의 조각이 서 있었다는데 오래 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없다. 하드리아누스문의 양쪽에 세워진 탑 가운데 성 줄리아탑이라고 하는 남쪽 탑은 하드리아누스황제 시절에 세워진 것이 맞으나, 북쪽 탑은 셀주크의 술탄 알라아딘 케이쿠바드 1세 시절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2)
칼레이치 구시가지에서 벗어날 무렵부터는 기온이 올라가는 탓에 땀이 줄줄 흐른다. 땀도 땀이지만 바지가 감기는 것이 영 불편하다. 반바지를 입었더라면 참 좋았을 뻔 했다. 호텔을 나서기 전에 오늘은 반바지를 입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아내의 권유를 흘려들었던 것이 후회된다.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것을 깜박 잊었다.
이른 아침인 탓도 있겠지만, 고즈넉하던 칼레이치 구시가지를 벗어나면서 도심의 분위기가 홱 바뀐다. 도로도 널찍해지면서 사람들의 왕래도 많다. 도로에는 가로수가 무성하다. 키가 큰 나무들은 말로만 듣던 대추야자나무로 성경에서는 종려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 라마단 기간 중에 무슬림들은 해가 진 다음에는 대추야자로 원기를 회복한다고 한다. 좁아 보이는 도로를 트램과 차량들이 공유하는 모양이다. 안탈리아의 트램은 다양한 모양인데, 우리가 만난 트램은 하얀색을 칠해서 눈에 쉽게 띄었다.
가이드 가까이 붙어서 다녀야 하나라도 설명을 더 들을 수도 있다. 가이드에 따라 다르지만 일행들이 모두 모이기 전에 설명을 시작하거나 휘적휘적 걸어가면서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따로 설명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가이드 설명을 놓쳤더라도 사진을 찍어두면 나중에 확인할 기회가 생긴다.
안탈리아를 건립한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2세의 동상을 그렇게 만났다. 물기가 흐른 흔적이 남은 분수대 뒤에 서 있는 동상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 글을 쓰면서 사진의 주인공을 찾았다. 바로 아탈로스2세였다.
이곳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춤후리에트(Cumhuriyet)광장과 이스멧 이노뉘(İsmet İnönü) 광장 사이에 있다고 했다. 춤후리에트광장에는 터키공화국의 초대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서 있고, 아탈리아 관광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이스멧 이뇌뉘는 아타튀르크에 이어 터키 공화국의 2대 대통령을 지냈다.
우리가 안탈리아를 돌아보고 파묵칼레를 향하여 출발한 것이 9시반이다. 유람선에서 내린 것이 불과 한 시간 반 전이니 아탈리아를 본 것은 배를 타기 전의 시간까지 포함해서도 두 시간이 채 안된다. 처음에는 파묵칼레를 구경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는 생각했지만, 막상 파묵칼레에서도 석회봉과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보는데 소요한 시간은 불과 1시간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보는데 쓴 시간은 불과 3시간이 안된 셈이다. 일정을 이렇게 빠듯하게 움직인 것은 파묵칼레에서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 양고기로 저녁식사를 하려는 일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에 들었다. 물론 아내와 나는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기 때문에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도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떻든 여행상품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만드는 여행이었다.
파묵칼레까지는 버스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3시간 정도 달려 한적한 시골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에는 양배추로 담근 김치가 있어 인기를 끌었다. 알고 보니 이 식당의 요리사가 한국에서 조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