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명 대학병원 모 교수가 중소 대학병원으로 옮겨간 일이 있었다.
정년도 꽤 남았고 병원 내 입지도 괜찮았던터라 의외라고 생각하던 찰나 우연한 기회에 그가 자리를 옮기게 된 이유를 듣고는 수긍이 됐다.
그 교수가 자리를 옮긴 이유는 단 한가지. 이 병원에 내 인생을 걸 수 있는가. 즉, 비전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기존의 병원에서 매년 계약을 갱신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옮긴 병원에서는 안정적인 교수직과 더불어 노력한 만큼 보상을 기대해볼 만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 교수가 기존의 병원보다 유명세도 낮고 규모도 작은 병원으로 옮겼음에도 표정이 밝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높은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선뜻 나서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없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지금 호스피탈리스트 채용 공고에 나선 다수의 병원이 1억원 이상 심지어 2억원 이상의 높은 연봉을 제시하지만, 직함은 임상교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임상교수는 '교수'라는 명칭을 넣었을 뿐 병원 내에서는 전임의 보다 못한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전임의 출신의 호스피탈리스트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전임의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까.
전임의 신분에서는 그나마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는데 호스피탈리스트 신분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더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얼마 전 만난 호스피탈리스트가 원하는 것은 높은 연봉이 아니었다. 이 일을 지속하면서 정년퇴임을 할 수 있는 '직업의 안정성'이 절실했다. 그는 이를 '비전'이라고 칭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죽어라 일해도 '만년 대리'를 벗어날 수 없는 데 어떤 신입사원이 이 회사를 선택할까. 그것도 이 시대 성장동력이라 칭하는 발전가능성 높은 인재가….
호스피탈리스트를 도입,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병원은 모두 전공의부터 간호사는 물론 환자들의 높은 만족도를 얻으며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답은 이미 나왔다.
단순히 '급여만 높여주면 몰려오겠지'라는 안일한 접근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이 제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각 병원에 성공적으로 안정화되려면 제도적으로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걸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