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의협의 정책 기조와는 다른 연구 결과물로 '학자적 양심'을 드러내던 그가 이번엔 정부를 향해 작정하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요약하자면 "개념 탑재 좀 하세요"다. 무슨 일에 관련된 일일까.
무조건적인 의료계 편들기가 아니라 학자의 관점에서 본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들어봤다.
4일 이평수 연구위원은 최근 2차 원격의료 시범사업 결과에 대한 정부의 자화자찬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위원은 "현재 논란 중인 원격의료는 2013년 기획재정부가 의료의 접근성 제고라는 기존의 명분 외에 이용 편의라는 명분을 추가해 제안하면서 시작됐다"며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의 경제 논리에 의한 원격의료는 논란의 시작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원격의료 문제의 원인은 정부가 원격의료의 개념을 혼동하면서 원격의료가 활용돼야 할 경우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며 "원격의료, 원격진료와 원격모니터링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원격의료라고 표현하는 것이 혼란의 일차적 원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혼란 속에서 원격의료가 활용돼야 할 경우를 한정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대면진료를 원격진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개념과 활용 방안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해 제도화 여부를 정하겠다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원격의료의 개념 혼동이 시범사업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게 그의 판단.
이평수 위원은 "시범사업은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거나 실현 가능한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보다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시행된다"며 "두 차례 시범사업이 종료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사업의 목적 자체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시범사업 결과를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과 연계하고 있다"며 "문제는 시범사업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간호사 등 코디네이터라는 중재자가 개입된 원격진료이거나 특정 의사로부터 지속적인 진료를 받는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이다"고 비판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표방하면서 되레 시범사업 내용은 코디네이터가 포함된 '원격진료'이거나 '원격모니터링'으로 됐다는 것.
이평수 위원은 "원격의료를 위해선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정보통신시스템과 환자 상태를 측정할 장비의 활용이 필수적이다"며 "시스템 장비는 대면 진료에서 사용되는 장비 등과 마찬가지로 안전성, 유효성을 검증해야 하는데 시범사업은 이런 것들의 검증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까지 시범사업은 목적이 불분명해 그 내용과 방법은 물론 조건과 기준도 불분명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사업을 위한 사업이다"며 "이러다 보니 정부가 효과를 과장하고 결과를 의료법 개정 근거에 연계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원격의료 논란의 장본인인 정부가 먼저 개념 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뒤따랐다.
이평수 위원은 "결자해지를 해야 하는 쪽은 문제 원인을 제공한 정부에게 있다"며 "정부가 원격의료를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면 우선 개념 정리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원격의료, 원격진료, 그리고 원격모니터링의 개념을 정의하고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며 "개념이 정리되면 그에 따라 원격의료 활용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제시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라"고 강조했다.
의료 이용자인 국민도, 제공자인 의사도 의료법 개정안과 같은 원격의료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게 그의 판단.
이평수 위원은 "정부는 관련 단체와 야당도 반대하는 원격의료를 정부가 6개 부처를 동원해 강행하는지 이해시켜야 한다"며 "원격의료의 당위성을 토대로 원격진료나 원격모니터링이 활용되는 경우를 명확히 한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원격의료에 활용되는 정보통신시스템과 장비의 기술적, 임상적 안전성과 안정성 기준 마련에 대해 원칙을 정해야 한다"며 "정부의 이러한 조치와 변화가 선행된다면 의사단체를 비롯한 당사자들과 생산적인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