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집에 누군가 나타나서 탕수육에 자장면, 짬뽕 등 2만원 어치 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리곤 나가면서 주인에게 천 원짜리 두 장을 던지며 말했다. “야, 이거면 됐지?” 아마도 그는 주인과 멱살잡이를 하거나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고발되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 속된 말로 ‘진상’이라고 부른다. 진상이라는 단어는 우리말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상식을 벗어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 정도로 나온다.
최근 대한위장내시경학회는 제2차 상대가치개정안에서 내시경 소독 수가가 2천원 정도로 책정될 예정이라는 데 강하게 성토했다. 자체로 산출한 소독 비용 1만8천원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회는 주방용 세제로 세척해도 그 이상 비용이 들 거라고 비판했다.
작년 다나의원 사태 이후 의료기관내 위생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자, 보건 당국은 부랴부랴 이전까지 무시되었던 의료기구 소독 비용을 책정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의사나 전문 학회의 의견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실제 비용을 무시한 채 생색내기 잔돈푼이나 집어던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2천원은 소독약 값조차도 제대로 안 되며, 심지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산출한 관행수가 6400원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는 보건당국이 사회적 여론 때문에 내시경장비 소독 비용을 주지 않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실제 비용을 주기는 싫으니 가격을 후려치면서 그저 면피를 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의사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정부가 항상 이런 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검사의 수가는 1만원인데, 여기 필요한 1회용 기구는 2만원이어서 1회용을 사용하면 적자를 보고 재활용을 하면 불법이 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식으로 항상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구 비용을 환자에게 별도로 받는 것은 (설령 환자가 원하고 동의한다고 해도) 임의비급여라고 해서 이 또한 불법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얼마 전 원주 모정형외과에서 일어났던 C형간염 집단감염이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속단한 보건복지부는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여 환자에게 위해를 가했을 경우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원주경찰서의 수사 결과 주사기를 재사용 한 것이 아니라고 드러났음에도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사태의 진실이 어떻든 간에 보건 당국은 의료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은 없고 오로지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여 의사들을 옥죌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의사들은 법규를 지키면 지킬수록 손해를 보고, 지키지 않으면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양심에 따라 손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이를 지켜보면서 꽃놀이 패라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국민들은 이득을 보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민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그렇게 남겨진 건강보험재정 흑자는 호화 사옥 등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중국집 진상 손님이나 일진 빵셔틀이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건 정말 참담한 일이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벤치마킹 하겠다고 오는 외국 학자나 공무원들이 이런 진상짓을 배우고 가지나 않을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