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부족상의 이유로 권역응급센터 운영에 난색을 표한 서울대병원이 수술장 확대 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공간이 부족해 권역응급센터를 운영할 수 없다는 하소연은 핑계에 불과했다.
병원 측 "수술장 확충 시급" vs 정부 측 "공간 부족은 핑계"
4일 서울대병원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본관 2층에 위치한 진단검사의학과 자리에 수술실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수술장 옆에 있는 진단검사의학과 검사실을 의생명연구원으로 옮기면 약 1000평 규모의 공간 여유가 생긴다.
이 공간에 수술실 1~2로제트를 짓겠다는 게 병원 측의 계획이다. 수술실 1로제트 당 수술장 5~6개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10개 이상의 수술장이 생기는 셈이다.
이는 앞서 의생명연구원 내 연구실 상당수가 의학연구혁신센터로 이전함에 따라 공간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추진된 방안이다.
서울대병원 정진호 기획조정실장(피부과)은 "외래를 통해 입원하는 환자의 수술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병원 내 수술장 증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이 수술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 보건복지부는 수술장을 확대할 공간 1000평 중 10~20%만 정부가 권하는 권역응급센터 시설 기준에 맞춰 운영해줄 것을 설득 중이다.
복지부 서민수 사무관(응급의료과)은 "얼마 전 서울대병원에 현장실사를 한 결과 공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왔다"면서 "수술장 확대 공간 중 일부를 권역응급센터에 할애하면 운영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공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권역응급센터 운영에 나서지 않는 것은 명분없는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수술실을 늘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응급실도 함께 늘려야한다는 얘기다"라며 "지금도 응급실 과밀화가 심각한데 여기에 수술장만 더 늘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취지 공감하지만 기준 맞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
그렇다면 서울대병원의 행보에 응급실을 지키는 일선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어떤 생각일까.
응급의료 질 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울며 겨자먹기로 수가 가산 등 정부 정책에 발맞추고 타 대학병원 입장에서는 서울대병원이 노골적으로 기준에 맞추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분위기다.
응급의학회 양혁준 이사장(길병원 응급의학과장)은 "학회 입장에서는 서울대병원이 참여하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시설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고 했다.
최근 강화된 권역응급센터 기준에 따르면 시설 이외에도 응급실 병상 포화지수 등 운영에 대한 규정도 있는데 이미 극심한 과밀화를 겪고 있는 서울대병원은 기준을 맞추기 힘들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이사장은 "서울대병원 측은 시설 기준을 맞추는 것보다 과연 운영 기준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학회 차원에서도 거듭 기준 완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