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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11]

Don't forget '93, 모스타르(2)


양기화
기사입력: 2016-04-11 05:00:35
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Don't forget '93, 모스타르(2)


427년을 굳건히 버텨오던 스타리모스트는 1993년 11월 9일 보스니아내전의 와중에 60발의 포탄이 떨어져 완전히 부서졌다. 사건 직후 크로아티아 대변인은 다리가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고의로 파괴했다고 공표했다. 학술원은 전략적 가치도 없는 다리를 파괴하는 행위는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표본이라고 비난했으며 안드라스 리들마이어(Andras Riedlmayer)는 '기억의 파괴'라고 규정했다.

브라체 페지카거리에서 바라본 스타리모스트.
크로아티아군을 피해 숨어있던 무슬림들은 스타리모스트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다리로 나와 현장을 확인하고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총알이 날아들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말이다. 스타리모스트의 상징성은 로버트 베번이 '집단 기억의 파괴'에서 인용한 일흔 살의 보란카 산티츠의 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 다리에서 첫 키스를 했지. 머리 위를 비추던 달빛과 별빛이 아직까지 생생하다오. 저 맑은 강물에 돌멩이를 던지던 기억도….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게 무너져버리고 말았구려.(1)"

'우리는 왜 파괴된 다리의 이미지를 보며 학살당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볼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크로아티아 출신 작가 슬라벤카 드라쿨리치는 이렇게 답했다. "다리는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개인보다 더 오래 살아남도록 지어졌다. 다리는 영원을 붙잡으려는 시도이며 개개인의 운명을 초월한다. 죽은 여인은 우리 가운데 한 명이지만 다리는 인류 전체다.(1)"

이렇듯 스타리모스트의 상징성은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전후 모스타르 주민들을 봉합하기 위해서라도 다리를 재건할 필요가 절실했다. 1998년 유네스코는 스타리모스트를 같은 재료와 건축기술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한 국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세계은행을 비롯하여 아가 칸(Aga Khan) 문화재단, 세계유산기금 및 유럽 각국에서 참여하여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였다. 헝가리군의 다이버들은 네레트바강 바닥에서 포격으로 부서져 내린 다리의 조각들을 건져 올렸다.

터키정부는 기록보관소에서 스타리모스트의 원설계도를 찾아내 터키의 에르 부(Er-Bu) 건설회사의 시공으로 2001년 6월 7일 재건이 시작되었다. 옛 다리의 부서진 부분은 모스타르 지역에서 나는 바위를 다듬어 채우는 방식으로 모두 1088개의 돌조각들을 짜 맞추어 재건이 진행되었고, 준공식은 2004년 7월 23일 열렸다.(2) 준공식에는 세계 10개국의 정상들과 영국의 찰스 황태자,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3)

단순히 스타리모스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유보다는 발칸이 도화선이 되어 벌어진 모든 전쟁의 아픔이 치유되고, 이 조그맣고 아름다운 도시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 다리를 '새 옛다리'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566년 이래 모스타르의 상징이었던 '옛다리'는 1993년 11월 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무너져 내렸으며, 지금의 다리는 2007년 복원된 것이기 때문이란다. 강물 속으로 무너져 내린 돌조각들을 찾아내 원형에 따라 쌓아올렸다고는 하나 옛다리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

다리를 덮고 있던 400년 묵은 이끼가 사라진 때문이 아니라 20년 세월의 더께 속에서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 때문에 '옛다리'와 '새 옛다리' 사이엔 메우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4)

하지만 원래의 설계대로 다리를 재건한 것이 지역주민들의 갈등을 봉합하자는 취지에 따른 것임을 고려한다면 굳이 '새 옛다리'라고 불러 아픈 기억을 되살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무슬림과 정교 그리고 가톨릭교도 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냥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인종이나 종교적 차이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톨릭이나 정교, 심지어는 이슬람교까지도 그 뿌리는 유대교로 통하며, 종교적 차이는 있지만, 발칸반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남슬라브계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보스니아는 티토가 즐겨 인용했던 공존의 모범사례처럼 인종과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여 서로 혼인이 예사롭게 이루어지던 나라였던 것이다. 특히 모스타르는 종교간 통혼률이 전국에서도 아주 높았다고 한다. 그런 보스니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티토 사후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주도하는 대세르비아주의 때문이다.

연방이 와해되면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계와 연대하여 무력을 행사하면서이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는 힘을 합쳐 세르비아의 침략을 막아냈지만, 그 후에 이번에는 대크로아티아를 내세운 크로아티아가 모스타르에 살고 있는 크로아티아계와 합세하여 무슬림들을 공격한 것이다.

1999년에 발표한 '우리가 코소보에 와있는 이유'라는 칼럼에서 수전 손택은 밀로세비치의 대세르비아주의는 이웃 민족을 고통에 빠트린 것처럼 세르비아인들까지도 고통에 빠트릴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5)

모스타르 주민들이 종교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평화롭게 지내오다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서로를 학살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은 보스니아 출신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18세기 후반 어느 가을에 있었던 대홍수를 겪는 과정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자연의 힘과 공통적인 불행의 짐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데 뭉치게 했으며 적어도 이날 하룻밤 동안은 종교와 종교를 갈라놓은, 특히 터키인들로부터 라야를 갈라놓은 틈에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6)" 이렇듯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통하던 이들이 멀어지게 되는 과정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냈다.

소설은 보스니아 동쪽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가까운 비셰그라드 부근을 흐르는 드리나강에 오스만제국이 다리를 건설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파괴되기까지 무려 340여년에 걸쳐 다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다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보스니아인들의 역사, 가치관, 문화가 담겨 있고, 특히 운명에 관한 보스니아 사람들의 생각을 풀어내는 서사적 힘을 인정받아 1961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보스니아내전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끔찍한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정서가 언론인들 사이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위된 사라예보의 이미지가 매일 저녁 텔레비전을 통하여 수십억 인구에게 전해지는 CNN효과 덕분이라고 수전 손택은 설명한다.

뉴스위크에서 일하는 미국 사진작가 론 하비브가 전한 '죽어가는 이슬람여인을 발로 차는 세르비아 민병대원' 같은 사진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7)

코스키 메흐메트파샤 모스크의 미나렛 뒤로 훔 언덕 위에 우뚝 서있는 십자가가 보인다(왼쪽), 시장 윗길 모스크 끝에 있는 묘원(오른쪽).
코스키 메흐메트파샤 모스크에서 다시 골목길로 나오니 가게 문을 여는 시장사람들로 부산하다. 모스크 밖에서 미나렛을 올려다보니 멀리 모스타르를 에워싼 훔 언덕 위에 서 있는 커다란 십자가가 대비된다.

로버트 베번은 33m 높이의 이 십자가는 도시에 남아있는 소수의 무슬림을 향해 치켜든 이른 바 '가운데 손가락'이라고 하였다. 내전 전의 세계시민주의적이었던 모스타르로 돌아가려면 훔 언덕 위에 서 있는 십자가를 끌어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장에서 조금 벗어나 길을 따라 언덕 쪽으로 올라갔더니 모스크가 나오고 그 끝에 묘지석들이 늘어서 있다. 하얀 묘지석 대부분이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하트모양의 묘지석은 어쩌면 죽은 이를 사랑하던 연인이 세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자료

(1) 로버트 베번 지음. 집단기억의 파괴 40쪽, 알마 펴냄, 2012년
(2) Wikipedia. Stari Most.
(3) 이종헌 지음.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93쪽, 소울메이트 펴냄, 2012년
(4) 한겨레신문 2013년 7월 29일자 기사. [권태선 칼럼] 모스타르의 '새 옛다리'에서.
(5) 수전 손택 지음. 타인의 고통 236쪽, 이후, 2004년
(6) 이보 안드리치 지음. 드리나강의 다리 110쪽, 문학과 지성사, 2005년
(7) 수전 손택 지음. 타인의 고통 136-137, 155쪽, 이후 펴냄,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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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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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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