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랑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한 축사가 화근이 된 것이다.
그는 대한의사협회 연수평가단 직원의 이야기만 듣고 같은 날 지척에서 춘계학술대회를 하고 있던 산부인과의사회를 '그쪽'이라고 표현하며 "직선제 학술대회에 참석자가 더 많고, 직선제가 산부인과를 대표하는 의사회라 믿는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 단체의 기 살려주기가 의도였다면 손색이 없는 축사였다. 하지만 문제는 김숙희 회장이 산부인과 전문의라는 데 있다.
김 회장의 발언을 전해 들은 '그쪽' 산부인과의사회 집행부는 발끈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이야기한 것도 모자라 김 회장이 편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같은 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산부인과의사회에는 산부인과 의사만 600여명이 참석했고, 강의장이 모자라 2개의 방을 더 빌린 상황이었다.
사실 김 회장은 일찌감치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에 힘을 싣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김 회장은 5년 전 산부인과의사회 회장 선거에서 쓴 맛을 봤던 박노준 회장과 대척점에 있는 단체를 지지하고 있다. 2011년 산부인과의사회 회장 선거 당시 박노준 회장은 38표를 획득해 36표를 얻은 김숙희 회장을 재치고 재임에 성공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가 창립총회를 할 때도 참석했고, 춘계학술대회에서도 직선제에만 참석했다.
그는 단순히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에 '초청'을 받아서 간 것뿐이라며 통상적인 격려와 덕담을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로부터는 초청 공문 자체를 받은 적이 없어 안 간 것이라고도 했다.
본인 의도가 격려와 덕담이었다고 하더라도 발언 내용은 누가 들어도 편향적이다. 그는 축사 때 발언을 문제삼아 산부인과의사회가 반발하며 공개사과를 요구하자 "직선제 산부인과가 정통성이 있고 회원들의 뜻을 반영한 단체"라고까지 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두 개로 나눠진 의사회가 통합에 대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자 대의원 자격까지 박탈해가며 중재에 나섰다. 대개협으로는 안되니 의협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 의사를 대표하는 공인의 자격인 서울시의사회장이 한쪽만 지지하는 발언을 한다면? 더군다나 서울시의사회장이 산부인과 전문의라면?
김숙희 회장은 산부인과 전문의이지만 서울시의사회장이라는 공식적 직함을 갖고 있다. 서울시 의사들을 대표하는 공인인 만큼 치우지지 않는 중립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의협 상근부회장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출사표 때문에 의협의 중립성이 훼손됐다며 추무진 회장에게 인적 쇄신을 요구한 바 있다. 이 협의회 대표가 김 회장이다. 중립성 훼손을 지적하던 김 회장이 한쪽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우선순위에 올랐을 때도 과거 언론 기고글이 화근이 돼 당선권에서 밀려나는 쓴 맛을 본 적이 잇다. 김 회장은 2012년 한 언론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쓴 적 있다.
쓴 맛을 본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또 다시 한 단체를 지지하는 듯한 편향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소신이었다면 같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비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공인으로서 중립성과 '말의 무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