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서울 K요양병원 8층으로 출근하는 시간이다. 메신저를 켜고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이전 근무자에게 업무 인수를 받으면 아침 7시까지 꼬박 밤을 새야 하는 당직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병실과 복도는 깜깜하다. 환자들의 숨소리가 병실 밖으로까지 새어 나올 정도로 고요하다. 스테이션만이 환하다.
30~40분마다 병실을 다니며 환자의 숨소리는 괜찮은지 불편함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혈관주사(IV) 라인을 확인하며 산소는 잘 공급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전자의무기록장치(EMR)에 기록하고 다음날 낮에 쓸 주사약을 준비해둔다. 서류 작업까지 하다 보면 9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다. 한 달의 절반인 15일은 야간 당직, 일명 나이트 근무를 한다.
우리 병원에는 78명의 간호사와 22명의 간호조무사가 있다. 간호조무사 22명 중 7명이 혼자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 7명 중 나를 포함한 2명은 야간당직만 전담하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 일을 한지는 9년째. 나홀로 야간 당직을 한지는 4년이 됐다.
내가 일하고 있는 8층 병동은 간호사 3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한 팀이다. 야간 당직은 간호사 1명을 제외하고 3명이 돌아가며 서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혼자서 야간 당직을 선다고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다. 야간에도 당직의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생기면 의사 지시하에 환자를 케어하고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병원 업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병원 일이 살림보다도 즐거울 정도다. 약 19년을 간호조무사로서 임상에 있으며 경험을 쌓았다. 모르는 의학 용어가 있으면 의학 교과서를 찾아가며 체득했다.
"7월부터 간호조무사의 야간 당직 금지? 불안하다"
그런데 요즘 불안하다.
법제처가 그동안 예외로 인정해줬던 요양병원 당직의료인에서 간호조무사를 제외해야 한다고 했단다. 정부는 당장 7월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한다. 인근 요양병원은 이미 간호조무사 당직 근무표를 바꿨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병원은 아무 얘기가 없다. 정부에서 당직 근무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각 요양병원에다가도 보냈다고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
불안한 이유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환자다. 간호조무사 야간 당직이 없어지면 당장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려는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간호사가 충분하다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지시로 업무를 보는 게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무 환경이 좋은 대형병원으로 인력이 쏠리다 보니 요양병원 같은 중소병원은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우리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낮에 일하는 간호사가 부족해 구인공고를 내지만,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특히 야간 당직을 서겠다는 간호사는 더더욱 부족하다.
우리 병원은 간호사가 간호조무사보다 월급을 100만원 정도 더 받고 있지만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월급이 적다며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특히 젊은 간호사는 요양병원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월급을 파격적으로 인상할 수는 없지 않겠나.
간호사도 없는 상황에서 현재 있는 인력이 야간 당직을 서야 하는데 원활한 협조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아 있는 간호사들이 힘에 부쳐 환자 관리에 질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0년 가까이 간호조무사 생활을 하면서 쌓은 경험, 그리고 스스로 노력해 온 것을 밑바탕으로 자신감 하나 믿고 버텨왔다. 지금 이곳도 내 실력을 인정받아서 있는 곳인데 명확하지 않은 법조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여있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침범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을 만들어 놓고, 능력 있는 사람이 일도 못하게 만드는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새벽 2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스테이션으로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오신다.
"할머니 어디 가고 싶어서 나오셨어요. 오늘 큰일은 보셨어요?"
*본 기사는 메디칼타임즈가 서울 K요양병원에서 야간당직을 하는 간호조무사 A씨(55)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해당 간호조무사의 실명은 본인의 요청에 의해 익명처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