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 내부에서 솔솔 새어 나오고 있다.
'전화상담=원격의료'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시범사업 참여를 위해 시범사업추진단까지 꾸리려는 열의를 보이는 지역 의사회까지 등장했다.
전화상담은 원격의료의 단초가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와는 다른 움직임인 것.
한 대도시 A구의사회 회장은 1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혈압 당뇨병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원격의료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판단했다"며 "만성질환자를 의사가 직접 전원하고 관리하자는 취지다. 오히려 만성질환 주치의제라고 할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고혈압과 당뇨병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적절한 지원과 교육을 통해 합병증을 예방하고 악화를 감소시킨다는 게 골자다. 여기에 대면진료와 함께 전화상담 같은 비대면 관리 개념을 새롭게 만들었다.
복지부가 생각하고 있는 수가(안)는 ▲대면진찰로 이뤄지는 만성질환 관리 계획 수립, 점검 및 평가는 9270원 ▲주 1회 이상 환자 혈압, 혈당 등 정보 확인, 월 2회 이상 리마인드 서비스를 제공하면 1만520원(지속 관찰 관리료) ▲전화상담료는 7510원(최대 월 2회까지 인정)이다. 이를 모두 합하면 월평균 2만7300원, 최대 3만4810원이 된다.
A구의사회 회장은 "만성질환자 상담에 대해 없던 수가를 정부가 만들어서 주겠다고 하는데 개원가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다음 주 중 회원들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에 대한 설명회를 열어서 내과와 가정의학과 회원의 참여를 유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A구의사회에 따르면 내과와 가정의학과 원장 30~50명이 참여하면 환자 풀이 3000~5000명이 된다. 수가를 2만7300원으로 계산했을 때 시범사업을 한 달만 참여해도 의원 한 곳당 273만원의 매출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 구의사회는 시범사업 참여 인원이 최소 30명만 넘으면 추진단을 별도로 꾸려 정부와 적극 협의하고 회원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A구의사회 회장은 "시범사업 참여 환자풀이 3000~5000명이 되면 제대로 된 데이터를 구축해 더 나은 방향의 만성질환관리 시스템을 의사회가 먼저 제안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전화상담=원격의료'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들도 나왔다.
한 정형외과 개원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개원가의 파이를 더 키울 수 있고 진료 패러다임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말 그대로 시범사업인 만큼 1년 동안 먼저 해보고 반대 의견을 내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범사업은 확정된 게 아닌데 이것마저 반대하면 규제 밖에 안 남는다"며 "전화상담은 원격의료의 단초라는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제도가 어떻게 운영될 예정인지 먼저 알아보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소병원장도 "원격의료라는 네글자에 갇혀 의료계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재진 환자만 해당되고, 환자대상군도 좁으며, 의사가 먼저 환자한테 전화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복지부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게 있다"며 "원격의료에 대한 개념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화상담이 포함된 만성질환 관리사업이 원격의료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은 상황.
대한의원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전화상담은 진료의 개념 자체가 왜곡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원격진료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결국 원격모니터링이 시행되고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며 우려감을 드러냈다.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 관계자도 "스마트폰에서 환자 정보를 전송, 수신하기 위해 어플을 설치해야 한다면 기존의 원격모니터링 개념과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흔히 생각하는 전화를 통한 상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