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의 구시가지에서 개업하고 있는 필자는 아침 출근길에 병원근처에서 종이박스 모으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간혹 그 분들 중에 환자로 오셔서 낯이 익은 어르신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실명하는 질환인 망막박리가 생긴 할머니께서 한쪽 눈이 실명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일도 있었다.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드리니 혼자 살아 수술비도 없고, 대학병원에 누가 데리고 갈 보호자도 없다면서 그냥 안약이나 달라고 하셨다. 이후에도 가끔 손자의 손을 잡고 한쪽 눈이 실명한 채로 오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국가(OECD평균: 11%)중 세계 최고로 노인의 절반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1/3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2050년에는 우리나라가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이 세계에서 2번째 높은 나라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노인인구 증가 분 만큼의 노인의료비 증가는 필연적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노인의료비를 젊은이의 의료비나 전체 국민의 의료비와 비교해서 노인의료비 증가만 유독 강조하고 있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의 2014년 건강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 증가율은 59.9%로 전체인구 1인당 연평균 진료비 증가율 59.8%와 불과 0.1% 차이다.
2010년 KDI 보고서(고령화와 의료서비스비용)에서 노인의 외래진료비 증가율(2.1배)는 입원진료비 증가율(3.5배)의 60%에 불과하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노인인구의 건당 입원진료비는 1.07배 증가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건당 외래진료비의 경우 8년 동안 오히려 37% 감소하였다(7만1700원 → 4만5400원).
2001년부터 16년간 인상되지 않은 15,000원의 정액구간으로 인해 노인정액제가 동네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많은 빈곤층 노인의 의료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노인복지 향상을 막는 제도로 변질되었다.
생산과정에서 공산품과 의료서비스 모두 생산의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산품은 이미 이런 요소가 투입되어 만들어진 제품이므로 원가 1만 5000원짜리 제품을 50% 세일로 7500원에 구입할 수 있지만, 의료서비스는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므로 구매자가 그 비용을 절반만 낸다고 하면 당연히 그 서비스는 줄어든다.
대부분의 어르신께서 본인부담금 1500원을 생각하고 병원에 오시면 동네병원 의사는 정액구간인 총 진료비 1만 5000원에 맞추어 진료하고 있다. 정액구간이 정해진 16년 전 1만 5000원 짜리 진료는 실제물가가 두 배 정도 오른 것을 고려하면 이제 그 돈으로 16년 전 7500원짜리 진료를 받는 것이다.
노인정액제를 1만 5000원으로 묶어 놓는 것은 물가와 수가가 아무리 올라도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1만 5000원짜리 진료를 해드리라는 것과 같으므로 진료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서비스 내용이 부실해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4 노인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33.1%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독거노인의 경우 43.7%가 우울 증상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노인의 90%가 만성질환을 갖고 있으며, 70%는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인 절반이 빈곤층으로 많은 어르신께서 대학병원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는 현실이다. 갈수록 증가하는 독거노인의 건강과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라도 노인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 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동네병원이라도 편하게 다니시게 부담을 덜어드리도록 노인정액제를 하루빨리 개선해야한다.
노인정액제 대폭개선에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는 정책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건강보험재정 흑자가 20조 원을 넘어섰는데, 노인들이 언제까지 1만 5000원짜리 진료를 받아야하는지? 참고로 현재 특급호텔 주차 시 주차비 별도로 발렛 비용만 2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