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치료나 수술적 치료가 어려운 말기심부전 환자는 심장이식이 표준 치료법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공여자가 크게 부족해 오랜 시간 기증을 기다려야하는 게 현실이다.
생명 연장에 필수적인 심장이식을 적절한 시기에 받지 못한 환자들은 결국 사망할 수밖에 없다.
‘좌심실보조장치’(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LVAD)는 말기심부전 환자에게 있어 심장이식까지의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고 고령 및 기저질환으로 심장이식이 불가능한 환자 생명을 연장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LVAD 이식은 말기심부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 부족과 고비용이 든다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말기심부전 환자 LVAD 이식의 임상적 유효성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제한적 또는 선별적 건강보험 적용방안을 심도 깊게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3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말기심부전 환자 생명연장: 인공심장 이식 활성화를 위한 좌담회’에는 심장외과·심장내과 전문의들과 정부기관 담당자들이 참여해 LVAD 이식 필요성과 함께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는 삼성서울병원 전은석(심장내과)·이영탁(심장외과) 교수가 좌장을 맡고 같은 병원 최진오(심장내과)·조양현(심장외과) 교수가 말기심부전 환자 LVAD 이식 필요성과 해외 사례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또 분당서울대병원 심장외과 박계현 교수, 서울아산병원 심장외과 정철현 교수,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홍석근 교수, 삼성서울병원 심장뇌혈관병원 최남경 전문간호사가 패널로 참여했다.
더불어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이동우 사무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등재실 유미영 실장·박정혜 차장·김순희 차장과 급여기준실 지영건 실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좌담회에서 논의된 말기심부전 환자의 LVAD 이식 필요성에 이어 보험급여를 위한 실질적인 선행과제와 구체적인 적용 방안에 대한 패널 토의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좌장 삼성서울병원 이영탁 교수: 말기심부전 환자에게 LVAD 이식은 반드시 필요한 치료법이다.
문제는 고가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LVAD 기기 값만 약 1억5000만원이고 여기에 행위료까지 포함하면 2억원 정도다.
때문에 의사들은 말기심부전 환자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LVAD 이식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여러 해부터 고민해왔다.
또 LVAD 이식술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한 끝에 근래에 시행됐다.
말기심부전 환자들의 LVAD 이식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임상의들 의견을 듣고자 한다.
부천세종병원 홍석근 교수: 말기심부전 환자는 심장이식 외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별다른 선택이 없다.
문제는 심장이식을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기관에 부탁하고 싶은 점은 정책적 차원에서 심장이식에 준해 LVAD 이식술을 동등하게 취급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LVAD 이식은 고비용이 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만약 말기심부전 환자에게 모든 비용부담이 전가된다면 국내에서 LVAD 이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도 안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심장이식의 경우 환자 본인부담이 약 5%에 불과하다.
LVAD 이식 환자 역시 정부가 90% 이상 (보험급여) 혜택을 충분히 주되 규제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LVAD 이식 대상 환자, 시술자 및 시술병원 등을 심의하는 전문기구를 만들자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삼성서울병원 전은석 교수: 일본의 경우 그간 심장이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뇌사를 인정하기 않아 기증자가 없었는데 최근 뇌사를 인정하면서 심장이식이 가능해졌다.
일본에서는 심장이식을 받으려면 일단 보조인공심장(Ventricular Assist Devices·VAD)으로 생명 유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VAD 이식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VAD 이식을 받으려면 의사 8명이 참여하는 전문 심사기구에서 동의를 받아야 이식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다.
반면 국내 심장이식의 큰 문제는 자격만 되면 어느 병원이든 이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아웃컴(결과)을 컨트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심장이식 수술병원 중 아웃컴이 하위 10%면 심장이식을 제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웃컴을 제한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없다.
따라서 LVAD 이식을 비용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수술병원의 이식결과를 컨트롤하는 전문기구 설립을 제안하고 싶다.
이영탁 교수: 심장수술을 많이 안 하는 병원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LVAD 이식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또 국가에서 보험급여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병원들이 무조건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LVAD 이식은 병원끼리 경쟁이 아닌 서로 힘을 합쳐야만 발전하고 셋업이 되는 치료술이다.
심부전 의사들이 더 자주 만나고 협업을 통해 LVAD 이식을 활성화해서 후배나 후학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노력이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정철현 교수: 대외적으로 LVAD 이식은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말기심부전 환자들에게 더 많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아산병원도 LVAD 이식술을 시작했는데 환자 본인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병원에서 LVAD 3대까지 펀딩해서 한 차례 시술을 한 바 있다.
문제는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브릿지로 고비용이 드는 LVAD 이식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몇 달 뒤 다시 제거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억5000만원이라는 큰 비용을 선뜻 투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심장이식이 불가능한 말기심부전 환자에게 시행하는 것 또한 환자 적응증 기준이 애매하고 비용부담도 높아 대상 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브릿지가 아닌 최종적인 치료법으로 LVAD 이식이 필요한 대상 환자를 찾고 보험급여로 비용부담이 줄어든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LVAD 이식 전·후 정도관리와 사후관리가 선행돼야한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 국내에서 에크모가 허용되면서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도 일단 사용하고 보는 케이스가 많았다.
LVAD 이식술 역시 보험급여가 되면 비용과 효과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이식하고 보는 일이 생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일본처럼 의사들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적합한 대상 환자를 선정하고 또 전문기구를 통해 수술병원 결과에 대한 철저한 사후관리가 전제돼야한다.
심평원 유미영 실장: 지난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LVAD 이식술을 하면서 심평원에 행위 및 치료재료 결정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이에 심평원은 관련 학회에 의견을 요청했고 검토 중에 있다. 의사 행위료와 관련해서도 의협에 의견을 요청한 상태다.
오늘 좌담회를 통해 들은 바 LVAD 이식이 현행 심장이식이나 에크모와 비교해 비용 차이가 매우 크지 않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심평원 입장에서 보험급여와 관련해 고민되는 점은 환자 대상 선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우선 보험급여를 해야 할지, 또 막상 급여가 됐을 때 당초 예상보다 대상 환자가 더 많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고가 약의 경우 전문가들로 꾸려진 사전승인위원회에서 환자 급여여부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LVAD 이식술도 경험이 있는 의사와 시설이 갖춰진 병원을 선정해 제한적으로 시행하되 결과를 평가해 다시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이다.
이 부분은 우리 역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심평원이 LVAD 이식술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의사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 박계현 교수: 당초 LVAD 이식은 말기심부전 환자 심장이식까지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브릿지로 시행됐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LVAD가 기계적으로 굉장히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말기심부전 환자의 최종적인 치료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LVAD 이식술과 관련해 행위료가 높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수술 스킬 등 레벨을 따져볼 때 기존 판막치환술과 비교해 행위료가 더 높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사후관리에 필요한 다른 수가항목이 필요하다.
LVAD 이식 후 환자를 팔로 업하고 사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연중무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 대응팀 운영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임상의와 간호사가 환자를 케어하고 사후관리 할 수 있는 수가 보전이 이뤄져야 한다.
LVAD 이식술이 고비용이 든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대만·이탈리아·프랑스 등은 연간 이식환자와 수술병원 등을 제한해 보험급여를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역시 가령 연간 30케이스로 이식환자와 수술병원을 제한해 보험급여를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시범사업을 통해 점차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만하다.
가정적·사회적으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40대에서 50~60대 말기심부전 환자들이 LVAD 이식 혜택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의료수준을 감안할 때 당장 LVAD 이식이 필요하지만 고가의 비용 때문에 환자들을 외면하는 건 의료체계나 국민 정서상 ‘큰 이빨’이 하나 빠져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전은석 교수: 정부가 LVAD 이식환자에게 혜택을 준다면 의사 입장에서야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큰 무기를 갖게 된다. 지금은 ‘칼자루’ 자체를 못 잡고 있다.
말기심부전 환자들의 LVAD 이식은 시범적으로 전문기구를 만들어 대상 환자를 선정하고 사후관리를 통해 결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 보편화되면 현실에 맞게 규정을 바꾸고 보완해 충분히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평원 유미영 실장: LVAD 이식술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새로운 의료행위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 만큼 심평원 또한 검토를 하고 있다.
그러나 LVAD 이식 대상 환자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또 의사들끼리도 의견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영탁 교수: 국가에서 LVAD 이식 환자에게 보험급여를 해주면 불필요한 환자까지 이식을 남용하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건 이해된다.
나 또한 걱정된다. 에크모로 이미 경험을 하지 않았나.
지금도 LVAD 이식이 필요한 환자 적응증과 대상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고민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들 스스로도 고비용이 드는 LVAD 이식술을 불필요하게 많이 시행하면 국가적인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전문기구 같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서로 병원끼리 논의를 해서 충분히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전은석 교수: 장시간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해주신 임상의들과 복지부·심평원 담당자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언제든지 정부기관에서 우리한테 연락만 준다면 세종·원주까지 찾아가 말기심부전 환자들의 생명 연장을 위한 의사들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