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에 이어 김영란법 시행,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강화로 '감성 영업'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이야기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듯 싶었다.
바로 제약사들의 CP 강화가 영업사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하소연이다.
실제로 요즘 국내 제약사의 CP 강화 추세는 예사롭지 않다.
법인카드 결제 내역에 대한 사후 확인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바꾸는가 하면 제품설명회의 증빙 자료 요구는 기본, 현장 실사까지 하는 제약사가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MR들의 활동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못믿겠다는 것.
모 제약사는 지난해 모니터링 결과 17명에 달하는 직원의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월 평균 3천 여 건에 달하는 제품설명회, 전시·광고를 살펴보는 제약사도 있다.
현장에서 전화를 늦게 받았다는 이유로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애교. 제품설명회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친분이 있는 원장과의 식사마저 근거 자료를 만들어 내야한다.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회사에 노출된 셈이다.
모 제약사 영업사원은 "공정거래 환경 조성에는 누구나 공감한다"며 "하지만 일거수일투족 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고 털어놨다.
어느 순간 제약사의 꽃으로 불리던 영업사원이 잠시 한 눈을 팔면 비위를 저지르는 직군처럼 인식되는 건 아닌지 불쾌감이 든다는 게 그의 속내.
정작 문제는 실적이다. 제네릭 품목 위주의 중소제약사에선 그간 '감성 영업' 방식으로 매출을 올렸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표면적으로는 CP 강화에 압박 당하고 뒤로는 실적 압박에 신음하는 게 MR들의 현주소다.
공정경쟁의 풍토 조성에 반대하거나 영업사원들의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MR들을 한순간에 감시의 대상으로 만든 건 가족이라 일컫던 직원들에 대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함을 들게 한다.
'고위험 부서' 대상 업무 감사 실시 , CP 위반 제재 강화, 사전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및 실시, CP 전자기안문 시스템 개선 모니터링, 매월 전 유통 영업사원 카드 사용내역 모니터링 등 국내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CP의 방향이 '감시'로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최근 제약사의 화두는 윤리경영이다. 그 일환으로 강화된 공정경쟁 프로그램의 방향은 과연 윤리적일까. 모 영업사원은 "윤리경영이 아니라 감시경영"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