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한 산부인과에서 30대 독일인 산모가 분만을 위해 내원했고, 진통이 시작된 후 경막외 마취 시술을 받았다. 시술 직후 비자극검사(NST, non-stress test)에서는 정상 태아심박동이 확인됐지만 산모 요청으로 비자극검사기를 제거한 시점으로부터 1시간 30분이 지난 후 태아 사망이 확인된 사건이 일어났다.
NST란 산모 몸에 센서를 부착해 태아심박동, 태아 움직임, 자궁 수축 등을 모니터링해 태아의 안녕을 판정하는 검사다.
인천지방법원은 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금고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첫 번째, 의료행위 중 일어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이뤄졌다. 두 번째, 저수가 현실 속에서도 생명 수호에 대한 사명감으로 진로를 선택한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세 번째, 장기적으로 환자-의사 신뢰 관계를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모든 의료 행위에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동반된다. 그 결과, 이번 사건처럼 예측하지 못한 불행한 일이 일어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2011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료 행위로 인한 불행한 결과에 대해 의료종사자의 과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료종사자가 불행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고 이를 회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여기서 적절한 조치의 범위는 해당 시점에서 일반적인 의학 수준과 의료 환경 등을 종합한 의료종사자의 주의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가 경막외 마취 이후 1시간 30분간 비자극검사기를 제거해 태아 심박동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인지가 쟁점이다.
사건 기록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는 경막외 마취 직후 비자극검사로 태아 심박동이 정상적으로 청취됨을 확인함으로써 태아가 안녕하다는 의학적 판단을 했다.
약 20시간 동안 극심한 진통으로 지쳐 휴식을 위해 비자극검사기를 제거해달라는 산모와 보호자의 간절한 요청을 존중해 산모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1시간 30분간 비자극검사기를 제거했다고 한다.
해당 시점에서 태아 사망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으며, 예방할 수도 없었던 불가항력에 의한 불행한 결과로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에 의한 과실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금고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판결은 저수가의 현실 속에서도 사명감으로 분만을 담당해온 일선의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큰 충격일수밖에 없다.
2013년 통계에 의하면 출생아 1000 명당 3.3명이 분만과정 중 사망할 정도로 분만은 매우 큰 위험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의 분만수가는 31만원으로 OECD 평균의 약 20% 에 불과하고, 건강보험에서는 분만 1건 당 위험수가로 단 2만6000원을 책정하고 있다. 이는 분만이라는 과정의 위험성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비용이다.
더불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을 위해 정부와 분만 경력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같이 보상금을 분담하고 있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제도'는 위험한 분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의사들에게 지나친 위험부담을 지게 하는 무책임한 정책이다.
의료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국내 56개 시군구에는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전무하게 됐다. 모성사망률도 지난 10년간 2배 증가했다.
이러한 국내의 분만 여건을 반영하듯 2001년 대비 2016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 수는 약 3분의1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산부인과를 선택한 전공의들에게 이번 판결은 큰 상처를 주었고 향후 산부인과 전공의 모집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우리나라 분만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임은 자명한 상황이다.
이번 판결뿐만 아니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일명 신해철법)' 통과 등 불가항력적 결과마저 의사 개인이 책임지도록 강제하는 최근의 의료 환경 변화는 의료의 최일선에서 환자를 대하는 모든 전공의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고, 방어진료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고 있다.
의사를 잠재적 의료과실범,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는 최근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환자-의사의 신뢰 관계를 저하시킬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의료의 질 저하로 직결될 것이다.
양질의 의료는 우리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출생률은 우리 사회의 미래다.
이번 태아 사망 사건 판례는 시대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모성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 더 나아가 만성적 저수가 문제에도 불구하고 질높은 의료를 위해 노력해온 대한민국 모든 의사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약 10년 전 일본에서도 분만 과정 중 산모 사망으로 인해 의사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고, 당시 일본 사회 및 의료계에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해당 사건으로 인해 일본 사회는 붕괴된 분만 시스템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고, 일본 정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약 2100억엔(약 3조원)의 재정을 투입해 분만 수가를 현실화했다.
이런 외국 사례를 교훈삼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와 정부가 저수가 분만의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의사와 협력해 저출산 인구절벽 문제 타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나라 의료 전반의 수가 현실화를 통한 의료 질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차기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