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의무기록 보급률 전세계 1위, 의료 영상 저장 전송 시스템(PACS) 보급률 전세계 1위로 의료정보 활용을 위한 인프라는 충분하다. 하지만 데이터의 질과 개방성은 약하다."
22일 가천대 메디컬캠퍼스에서 열린 대한의료정보학회를 찾은 의료정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의료정보 수준과 문제점을 이같이 진단하고 병원중심으로 돼 있는 의료정보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60여개국의 의료정보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세계의료정보학회 박현애 회장은 세계 트렌드를 전했다.
박 회장은 "임상현장에서 쌓은 근거를 활용해 다시 임상에 적용하는 일명 실무기반 근거 의학이 최근 트렌드"라며 "그 중심에는 EMR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EMR만큼 좋은 근거를 생산해낼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라며 "임상에서 축적된 EMR 자료를 연구해 근거를 찾아내고 그 근거를 다시 환자 진료과정에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과거에는 EMR이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는 목적에 그쳤다면 이제는 공유해 연구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러닝 헬스케어 시스템(Learning Healthcare System)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나라 EMR은 병원 중심이라서 표준화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는 병원정보시스템 개발이 병원중심"이라며 "다른 나라는 여러 기관이 하나의 회사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밴드 중심이다. 밴드도 글로벌이다 보니 용어도 표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자꾸 개별적으로 만들려고 하니 글로벌로 데이터를 개방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보가 산발적이기 때문에 EMR 데이터 질도 높다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의료정보학회 박래웅 이사장은 "1980년대의 쌀을 반도체에 비유했다면, 4차 혁명에서 쌀은 데이터"라며 "우리나라는 기반 인프라는 잘 돼 있지만 데이터 질이 높은가에 대한 의구점이 있고 유전체, 시그널, 영성, 바이오뱅크 등 각각의 데이터가 흩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유희석 회장도 "1990년대 초부터 각 병원은 많게는 수백억을 투자해 개별적으로 EMR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며 "각 병원마다 특성이 있고, 자신들 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도 있어 (EMR 시스템이) 중구난방이 된 상황"이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사실 이같은 문제점을 정부도 인지하고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진료정보교류사업과 EMR 인증제가 그것. 진료정보교류사업은 CT 및 MRI 등 영상정보와 진료기록, 환자 개인정보 등을 의료기관 간 통일된 형식으로 교환하는 사업이다.
진료정보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EMR 시스템을 구축하는 청구프로그램 업체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에 질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구체적인 기준을 설계하고 내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8년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의료정보학회 노연홍 조직위원장은 "EMR이 각 병원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호환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국가적으로 보면 낭비"라며 "그런 걸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겠다는 게 정부의 방향이고, 개별 병원도 이 시스템이 도움된다고 판단되면 질은 같이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래웅 이사장은 "보급률이 높은 EMR 데이터를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며 "데이터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센티브 제도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예로 들었다. 미국은 EMR 데이터 질이 높으면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으면 디스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정부가 나서서 표준화 한 시스템을 일괄적으로 보급하기 보다는 표준화된 기능을 제시해야 한다"며 "기능을 따랐을 때는 인센티브라는 당근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