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의료계는 밥을 굶는 게 유행이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탄식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이 사흘 동안 밥을 굶었고,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이 20일 현재 사흘째 단식 중이다. 추 회장은 국회에서 연달아 발의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허용 법안 저지를 위해서였고, 김 회장은 노인정액제 개편에서 한방이 빠진 것을 반대한다며 단식을 시작했다.
투쟁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비폭력적인 투쟁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단식이다. 시작을 했으면 투쟁을 했다는 흔적이라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추무진 회장의 단식에는 투쟁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법안 저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법안은 국회에서 다뤄지는데, 대한의사협회 회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단식 투쟁을 했다. 불신임 위기에서 구사일생했던 바로 그날 "대의원회 임시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으니 단식 농성을 중단하겠다"라고 말했다.
사흘이라는 기간이 짧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추 회장은 세련되지 못하게 뜬금없이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법안 저지와 비대위 구성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렇게 급하게 단식투쟁 중단을 선언했을까. 일선 의사들 사이에서 "불신임 위기를 넘기려는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한의협 김필건 회장의 단식도 마냥 목적 달성을 위한 극단적 투쟁 방법이라고 해석하기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김 회장의 목적은 노인 외래정액제 개편에 한의사도 들어가야 한다는 것.
정부는 현재 노인정액제 개편을 전방위 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과는 내년 초진료가 1만5310원으로 정액 구간을 넘어 노인정액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한의과는 현재 노인정액제 상한선은 2만원으로 한의원 약 90%가 노인정액를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노인정액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의과, 치과, 약국은 정부와 협의체를 구성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충분히 협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에 극단적인 투쟁 방법이 등장하니 한의계 내부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회장 역시 불신임 위기에 놓여 있다. 한의사 6000여명이 회장 해임투표 발의 서명서까지 제출했고, 두 번이나 김 회장의 불신임을 다루기 위한 임시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투쟁을 시작할 때 이유가 있었다면 끝낼 때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개인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건강까지 해치는 극단적인 선택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