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꺼리는 중환자실이지만 그곳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경험을 안겨줬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닫게 해줬어요.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교수의 길을 열어주고 연구에 대한 끊임없는 영감을 줍니다."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직을 맡은지 18년째를 맞은 오의금 교수. 십여년째 교수의 길을 걸어왔지만 졸업 직후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했던 3년이 자신에겐 가장 피 끓는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그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업시간 중 학생들에게 '간호 현장'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간호는 환자를 기반으로 한 '실무과학'이자 '응용과학'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오 교수. 연구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환자가 최우선이며 모든 이론은 환자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단다.
30년 전, 환자의 숨결을 느끼며 일했던 당시를 마치 어젯 일처럼 되새김질하는 오 교수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치열한 중환자실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20대의 간호사는 지금 어떤 교수로 성장했을까.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수님, 중환자실 근무는 30년전 일이지만 여전히 간호현장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집니다.
네, 맞아요. 간호대 4학년 실습할 때 중환자실을 처음 접했을 때를 지금도 기억해요. 그때 운명처럼 '내가 있어야할 곳이 이곳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어요. 매순간이 긴장이고 치열한 곳이지만 내가 간호했던 환자 증세가 호전되는 것을 보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그렇다면 계속 병원에 남을수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교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인가요?
중환자를 간호하면서 저에게 도전의식을 느끼게 했던 환자군이 호흡곤란 환자였어요. 호흡기 장치에 전적으로 의지해야하는 호흡곤란 환자들은 간호사로서 해줄 게 없어 무력감을 줬죠. '저 기계가 나보다 낫구나'라는 생각에 도전의식이 발동했죠. 저는 자연스럽게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석사과정에 이어 시카고로 건너가 박사과정까지 밟은 것이 지금 이렇게 교수까지 하게 됐네요.
미래의 간호대학 교수를 꿈꾸는 간호사가 많을 것 같은데요. 간호대학 교수의 주 업무는 어떤게 있나요.
모든 전공이 그렇겠지만 요즘 교수는 과거와 달리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요.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매년 교수 평가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을 요구하고 학생들에게도 평가받기 때문에 수업 준비를 게을리 해선 안되요. 또 정교수가 될 때까지 계속 평가를 받는데 점점 더 타이트해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부교수가 되면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요즘에는 부교수도 매년 평가를 통해 재계약하는 식이에요. 굉장히 치열하죠.
그렇군요. 교수가 되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
일단 과거와 달리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고 SCI급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게 기본이에요. 또한 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봉사 등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 교육은 가장 기본이고 일정 수준이상의 연구도 필수항목이죠. 이와 더불어 전문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활동 또한 교수의 역할 중 하나라고 봅니다.
교수님들이 수업만 하시는 게 아니었네요(웃음)
네, 그럼요. 사립인 연세대 간호대학의 경우 학부 이외에도 RN-BSN, 일반대학원, 간호대학원 등 커리큘럼이 다양해요. 이는 곧 교수가 맡는 수업이 많다는 얘기죠. 개인적으로 제 경우에는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오면 오후 8시까지 퇴근하기도 빠듯하답니다. 수업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교수로서 연구업적을 쌓아야 하다보니 나머지 시간은 연구에 할애하고 있어요.
연구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연대 간호대학 IRB(연구심의위원회)위원장 이외에도 국제한인간호재단 이사, 미국 간호학 한림원 정회원에 복지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사업관리위원회(PM제도)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이유가 있나요.
네, 사실 연구분야는 저의 남은 교수 생활을 쏟아 붓고 싶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어요. 솔직히 간호대학 연구는 의과대학에 비해 정부 투자가 인색한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비용대비 효율을 따져보면 간호 분야 연구를 늘려야한다고 봐요. 적은 비용으로 의료현장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연구가 많거든요.
가령, 신약 및 의료기기는 시간 및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성공할 확률은 낮지만 간호기기는 즉각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넘쳐납니다. 지금도 중환자실 등 임상 현장에서는 간호사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할 정도죠. 정부에서 판을 깔아주면 얼마든지 산업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보건복지부에 간호정책국조차 없다는 게 늘 아쉬워요. 최근에는 대구첨복단지와 함께 간호분야 의료기기를 통해 산업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교수님이 연구에 관심이 많다보니 학생들에게도 자극이 되겠는데요?
호호(웃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난 2001년 교수직을 맡자마자 연세대 간호대학 주최로 간호용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했는데 그때 발간한 책자를 지금까지도 보물처럼 갖고 있어요. 수업시간에는 늘 '임상에 쓰일 수 없는 연구는 쓰레기다'라고 강조해요. 간호는 '실무과학'이자 '응용과학'으로 모든 연구의 바탕도 환자로부터 나온다고 수시로 얘기해줍니다. 실무 즉, 간호 현장에서 철저히 기본을 다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요. 결국 환자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봐요.
교수직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좀 극단적인 얘길해볼까요. 얼마 전에 '내가 만약에 죽으면 내 관에는 무엇을 넣을까'를 생각해봤어요. 가족사진은 아들딸이 챙겨주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와 쪽지들 그리고 그동안 펴낸 논문을 넣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학생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와 임상현장을 바꿔보고 싶은 진정성을 녹여낸 연구논문은 저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던지는 공통질문인데요,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거나 꼭 알아뒀으면 하는 게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간호는 한 가을의 '감'같은 존재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어요. 감은 덜익은 상태에선 떱고 맛이 없죠. 하지만 햇살과 시간이 무르익으면 맛좋고 달콤한 감이 되잖아요. 사실 요즘 젊은 간호사들은 자본주의에 물들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하죠. 간호사는 소명의식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분야이고 무르익었을 때 그 가치를 더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의사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더욱 도를 닦는 직업이에요(웃음). 흔히, 간호는 과학이자 예술이라고들 말하죠. 이 두가지가 맞닿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위해선 환자를 많이 보고 공부도 해야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