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기준 중국 의료기기 시장은 약 215억달러(약 24조370억원) 규모.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의료기기시장은 2012년 이후 연평균 8.9%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경제성장과 고령인구·민영병원 증가, 보건의료서비스 강화, 자국 의료기기 사용정책에 따른 내수시장 확대 등으로 오는 2022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리서치기관들은 이런 성장세를 토대로 중국이 오는 202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의료기기시장 2위 국가 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중국은 한때 가격경쟁력만을 앞세운 낮은 기술력이 접목된, 거기에 디자인·내구성까지 조악한 저부가가치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국가에 불과했다.
당연히 중국산 의료기기는 ‘Made in China’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이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중국을 ‘의료기기 변방국’으로 보지 않는다.
의료기기 대국에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은 어느덧 GPS(GE·PHILIPS·SIEMENS)와 같은 원조를 삼켜버린 짝퉁의 힘을 넘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앞세운 ‘Made by China’로 글로벌 의료기기 패권을 넘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新실크로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에 따라 CT·MRI·PET-CT·PET-MR 등 기술·제품 자급자족에 성공한 자국 진단영상장비를 해외로 수출하면서 글로벌 의료기기 영토 또한 넓혀가고 있다.
과거 한국보다 의료기기 기술수준이 떨어졌던 중국 의료기기산업은 어떻게 지금의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었을까.
시발점이자 원동력은 중국 개혁개방과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hina International Medicinal Equipment Fair·CMEF)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일 중국 심천(Shenzhen)에서 폐막한 ‘제80회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 Autumn 2018)은 중국 개혁개방 40년과 80회를 맞아 중국 의료기기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념비적인 행사로 주목받았다.
더욱이 전시회가 열린 심천은 중국 의료기기산업 3대 클러스터 중 한곳이자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듬해 1980년 8월 주하이와 함께 지정된 첫 번째 경제특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중국 의료기기산업의 태동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1978년 12월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이듬해 1월 중·미(中·美) 수교를 체결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1979년은 개혁의 바람과 함께 중국 내 첫 의료기기 로컬전시회로 CMEF 모태인 ‘전국의료기기판매공급대회’가 처음 열린 시기다.
전국의료기기판매공급대회는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중국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겪는 과정에서 의료기기 내수시장 확대에 초점을 맞춰 개최됐다.
특히 1982년부터는 전국 각지 대도시를 순회해 열리면서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중국 의료기기산업 발전은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1979년부터 1989년까지 내수시장의 양적 성장 기반을 다진 전국의료기기판매공급대회가 시발점이 됐다.
전국의료기기판매공급대회는 이어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중국 업체들의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향상을 견인하며 자국 의료기기산업의 새로운 맥박을 뛰게 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전국의료기기판매공급대회는 1990년 5월 ‘전국의료기기전시회’로 정식 명칭을 바꿨다.
중국 업체들은 이 시기 선진 의료기기 필요성을 절감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내수시장 판매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의료기기 수요 증가에 따라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제품 사후관리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으며, 사용자 중심 의료기기 개발 필요성도 서서히 인식하게 됐다.
전국의료기기전시회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신제품 전시 품목이 증가하고 의료기기 소비 패턴을 이끌면서 전시회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주최사 또한 전시회 구성과 운영에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시장에는 지금의 CMEF Imaging관에 해당하는 ‘메인 홀’이 등장했다.
또 업체들의 의료기기 브랜드·제품을 영상으로 만들어 시각적으로 홍보하고, 기존 조립부스가 아닌 장치 개념의 부스도 생기기 시작했다.
90년대 내수시장 중심의 로컬전시회로 자리 잡은 전국의료기기전시회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업체들의 해외 수출 지원과 국제적인 의료기기전시회로 발돋움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
이 기간 중국 의료기기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중국이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해 글로벌 의료기기업체들의 중국시장 진출 기회가 더욱 확대된 것.
이어 2003년에는 전국의료기기전시회에서 이름을 바꾼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가 비상의 날개를 폈다.
CMEF는 21세기에 들어 국제전시회로서 글로벌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펼친다.
전시회 공식 홈페이지는 중국어와 영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글로벌 의료기기 트렌드에 맞는 제품 테마와 특별관을 마련해 전 세계 의료기기업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를 통해 CMEF는 중국 의료기기시장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국제전시회로서 입지를 다져 나갔다.
참고로 전 세계 국가 중 최초로 CMEF에 ‘국가관’(Pavilions)으로 참가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은 2002년 CMEF에 ‘한국관’을 꾸려 처음 참가했다.
CMEF는 특히 중국 정부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경제부흥 정책에도 적극 일조했다.
정부가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더딘 서부지역 개발계획을 발표하자 2000년부터 해당지역 각 성(省)을 돌며 전시회를 개최한 것.
보통 15만~20만명이 몰리는 CMEF 방문객을 감안할 때 개최지역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도 매년 상해(Shanghai)에서 고정적으로 열리는 CMEF 춘계전시회와 달리 추계전시회가 중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열리는 이유다.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의료기기전시회로 인지도를 쌓기 시작한 CMEF는 2008년부터 2018년 현재 한국의 4차 산업혁명과 대변되는 혁신 의료기기 기반의 ‘의료디지털화’ 구현을 통한 중국 의료서비스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 5월 8일 발표한 ‘중국제조 2025’(中國製造 2025·Made in China 2025)을 통해 10대 전략산업 중 마지막 10번째로 의료기기를 선정해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농 간 의료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고 아동·노인·여성·장애인·저소득 취약계층 보건의료서비스 우선 확대를 골자로 한 ‘건강중국 2030’(健康中國 2030)을 발표하면서 관련 의료기기시장 역시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빅데이터·IoT(사물인터넷)·가상현실(VR) 등을 접목한 혁신 의료기기 기반 의료디지털화 서비스는 이미 건강검진·진단 등 다양한 의료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CMEF는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2016년부터 의료디지털화를 전시회 메인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2017년 CMEF 춘계전시회에서는 ‘인공지능 건강전’을 처음 열고 인공지능, 의료로봇, VR, AR(증강현실), 3D 프린팅, 웨어러블 기기 등 약 200개에 달하는 제품을 선보였다.
‘의료기기 대국에서 강국으로, Made in China에서 Made by China’로 부상한 중국 의료기기산업은 개혁개방부터 의료개혁에 이르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내수시장을 키우고 자국 업체들의 세계시장 진출 통로를 제공한 CMEF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이미 제조업과 과학기술을 접목해 의료디지털화를 실현할 미래 의료기기산업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궁금하다. 어쩌면 10년 뒤 개혁개방 50년과 100회를 맞는 CMEF 현장에서 조우하게 될 그 완성된 그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