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전자는 무려 7년 동안 법적 분쟁을 벌였다. 애플은 자사의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으로 삼성에 '카피캣'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다.
삼성전자는 타격을 입었을까. 아니다. 흥미롭게도 스마트폰 후발대로 시작한 삼성은 애플과의 전쟁으로 '애플 대항마'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2011년 법적분쟁 시점부터 현재까지 이 둘은 부품 공급사-발주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합의로 종식된 분쟁이 '승자없는 전쟁'보다 서로 윈윈한 '노이즈 마케팅'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기업의 역사에서 적과 동지의 변증법은 자주 인용된 소재. 아마존이 자체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한 배송 사업에 뛰어들며 혈맹 UPS와 경쟁관계로 재편된 것도 그의 일환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국내 제약 환경만 봐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삼성과 애플을 보면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떠올랐다. 2016년 보툴리늄 균주 출처를 둘러싼 메디톡스의 의혹 제기는 급기야 미국 민사소송, 미국식품의약국(FDA) 시민청원서 제출,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까지 번졌다.
대웅제약 보툴리눔 제제 나보타의 FDA 승인 이후에도 메디톡스 측 공세의 수위는 낮아지지 않았다. 민사소송과 시민청원서는 무위로 끝났지만 ITC의 조사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의 전쟁이 서로간의 암묵적인 '윈윈 전략'이 아니라는 데 있다. 보툴리눔의 대명사 앨러간사 보톡스는 세계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다. 국내에서 보툴리눔 대표주자로 꼽히는 기업들도 세계 시장 눈높이에선 그저 저가 정책을 펴는 보톡스의 '카피캣'으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국내 무대를 떠나 미국에서 균주 출처를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는 모습은 보툴리눔 소비의 큰손인 지역 벤더뿐 아니라 의사, 혹은 소비자 모두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사업자들이 균주의 출처와 관련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외산만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되는 반사이익을 얻는다는 소리다.
제약업계 만큼 이합집산이 빈번한 곳도 드물다. 한때 파트너사를 자처하던 곳이 프로모션 품목의 판권 회수 이후 제네릭으로 맞불을 놓거나, 염변경 신약으로 특허 소송전에 나서는 사례가 흔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때의 원수가 동지로, 동지에서 원수로 얼굴을 바꾼다.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이다. 삼성과 애플의 전쟁은 이익을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로, 혹은 그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기업 흥망성쇠의 역사가 보여준 결론 역시 자명하다. 손해에 가까운 싸움을 이어갈 명분도 당위성도 실익 앞에는 의문부호만 남길 뿐이다.
메디톡스가 내놓은 수많은 정황 증거가 직접 증거의 부재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면 실익없는 싸움 대신 상생 방안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큰 기업 메디톡스의 상대는 세계 시장 앨러간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