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진료실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개통될 때만해도 의사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종이로 된 챠트가 전자챠트가 되면서 키보드 입력 단계에서 약간의 불편함과 귀찮은 것만 감내하면 정보화가 오히려 더 편하고 좋았다.
30여년 후의 의료는 내 삶을 통째로 바꾸어버릴 수도 있는 초지능정보화 사회로 소위 Digital Transformation이 결합된 매우 불확실한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의학회는 회원 학회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회원들의 미래를 준비해 주시길 바란다.
사회적 이슈가 의료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다. 우리는 지금 수세기 전에 비해 얼마나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을까? 미래는 어떻게 변화될까? 우리 사회는 전혀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사고와 폭력보다 자살이 더 많은 세상, 기아와 영양실조에 의한 부담보다 폭식과 비만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더 많은 사회, 질병이나 장애에 의한 사망보다 고령자로 늙어죽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이슈가 공중보건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위기로 체감하고 있다. 조류독감과 신종플루가 보건의료 문제에서 경제적 이슈로, 저출산 문제가 산아조절과 신생아 관리에서 민족절멸 위기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의 의료체계에서 많은 것은 한계를 노출하고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요한다.
사회 문제가 완전히 달라져가고 있는데 의료보장 초기의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다. 보건의료 인력의 수급, 시설과 장비의 배치 등 보건의료자원 전반의 정책에서 큰 변곡점에 다다르고 있다. 세부 전문학회로의 분화는 이제 융합을 통한 총체적 접근(hollistic approach)으로 회귀해야 할때다.
그리고 그 동인을 시민사회와 환자로부터 찾아야 한다. 의사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직으로서 나서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 대한의학회는 소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해야할 때이다.
의학회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적 권위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 의학회는 직업인으로서의 이해를 대변해야 할 의사협회나 병원협회와는 달라야 한다. 그럼 파괴적 혁신을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 뭘 파괴하고 뭘 혁신해야 할까? 의학회 정체성을 개별 회원학회의 정체성의 통합에서 찾되, 과거와 같은 개별 학회에서의 자율적 방임(?)은 비약적 진보(Leapfrogging progress)를 위한 관리된 혁신의 틀 속에서만 허락해야 한다.
과거처럼 의학 기술의 도입과 적용이 곧바로 사회 문제에 해답이 될때는 개별 학회에서의 역할만 충실히 해도 전문적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학회는 선진 의학의 모방과 분화를 통한 Fast Follower로서 진보를 거듭해왔다.
이제는 학문적으로나 진료실에서의 시술 역량에서나 우리는 선진국과 대등하거나 더 우위에 서 있다. 그래서 세부 전문학회의 학문적 융합을 통한 First Mover로서의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의학회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개별 의학자의 수월성과 집단지성의 파터너십에서 찾아보자.
한국은 임상연구에서 세계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임상자료의 질과 임상의사들의 분석 역량 모두에서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의학기술의 개발과 확산, 소멸의 전 주기에서 초기 개발 과정은 일정수준의 표준 역량을 가지고 있어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오히려 개발된 신기술들의 확산과 소멸의 과정에서 각국가의 의료보장체계에서 빠른 의사결정(보험등재 혹은 불사용권고)과 적응증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더 시급하며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서비스 이용자들은 개별 소득이 늘어나면서 의료 이용을 건강권의 기본 개념으로 인식하고 의료기술의 사용 단계에서부터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학회에서 임상진료현장자료(Real World Data)에 기반한 임상진료근거를 생성하는 즉, Real World Evidence(RWD/RWE) 플랫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한다. 최근 정부에서도 환자중심 최적화연구사업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개별연구자주도 임상연구 지원사업(IIT)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시민단체로부터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의 사용에 대한 감시 활동과 대책에 대한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이 모두가 의학회의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 모멘텀으로 작용할수 있을 것이다.
의학회가 진료현장의 자료에 기반한 근거를 생성하고 이를 의료기술평가나 의학적 적정성 평가의 지침으로 보급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시민사회와 환자로부터 전문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서 대한의학회가 구성 학회의 한 개인이 아니라 조직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키워나갈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