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길병원 전공의 사망사건 등으로 의사의 과도한 근무시간과 업무량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다. 과로사까지 이어지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다.
실제로 주당 52시간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 의사들의 근무시간과 업무량이 나홀로 외길을 가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24시간 사람이 있어야만 운영이 가능한 인적 자원 중심의 병원산업의 특성과 근무시간을 특정하기 힘든 한계점은 늘 의사들을 과로로 몰아갔고 그들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힘들게 밤샘 당직을 서고서도 새벽에 응급환자가 내원할 경우 퇴근 카드를 찍고 나갈수 없었고 자신이 맡은 환자에게 이상이 생길 경우 퇴근 후 저녁을 먹다가도 다시 병원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은 헌신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늘 노동권을 넘어서는 업무를 강요당했고 수십년간 그러한 희생은 당연한듯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였을까. 이제서야 노동권을 외치는 의사들의 움직임에 여론의 반응은 지나치리만큼 싸늘하다. 심지어 어떻게 의사가 노동권을 말하느냐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불은 지피고 있는 것은 잊을만 하면 나오는 의사들의 수입이다. 순수익이 아닌 매출을 기준으로 발표되는 연간 수억원에 달하는 의사들의 수입은 국민들에게 의사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의사와 노동권이 이어지지 않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의사들이 진료실을 뛰쳐나와 외치는 투쟁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시작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 의사들이 마치 노동조합과 같은 모습으로 거리로 나선데에 대해 반감은 그들의 목소리를 멀어지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의사들 역시 이러한 싸늘한 여론에 할 말이 많다. 의사들의 수입은 절대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며 그들의 노동시간과 업무량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데 있다. 실제로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마련한 의사 과로사 해결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이에 대한 근거는 전무했다. 과연 의사들이 실제로 얼마나 일을 하고 있고 몇 시간이나 근무하고 있는지 의협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의사들의 수입 또한 마찬가지다. 국세청과 통계청이 매년 의사들의 매출액을 발표해 의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의사들이 주장하는 순수익에 대한 자료는 단 한번도 시도조차 된 적이 없다.
이러한 가운데 의협은 또 다시 전국의 의사들을 모아 투쟁에 나선다고 한다. 관련 연구 용역과 산하 기관을 통한 통계자료로 무장한 정부를 상대로 맨 몸으로 결사 투쟁에 나서는 셈이다.
대정부 투쟁의 핵심 요소는 민심, 즉 여론이다. 과연 의사가 1년에 7억 8천만원이나 번다고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이 의사들의 투쟁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 의문이다.
아무리 좋은 투쟁 구호도 국민들의 공감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피켓이 아니라 그들의 반감을 돌려세울 수 있는 명확한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