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④|의료 소비자‧환자단체 좌담회 "규모 분류 대신 기능 재편"
"환자는 믿을 수 있는 1차의료 의사를 원한다"
박양명 기자
기사입력: 2019-07-04 06: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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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타임즈 특별취재팀| 팽팽하다. 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가입자와 공급자의 관계다. 가입자는 건강보험료 인상 반대를, 공급자는 수가 인상을 외친다. 수가를 올리면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해법은 상대편에서만 찾는다.
'의료전달체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해법을 찾는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메디칼타임즈가 창간 16주년을 맞아 전국 상급종합병원 병원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상급종병 원장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진 환자들의 의료 쇼핑이 도를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해결책으로는 경증 환자가 3차 병원을 찾을 수 없도록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메디칼타임즈는 의료 소비자가 왜 대형병원을 찾는지 그 이유를 듣고 해법을 찾고자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 C&I소비자연구소 조윤미 대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와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창간을 앞둔 지난 6월 말, 메디칼타임즈 내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Chapter 1. "환자 쏠림 환경 만든 건 의료계와 정부"
환자들은 '의료쇼핑'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은 공급자 당사자와 정부라고 했다.
안기종 대표(이하 안): 환자는 병원에 쇼핑하러 가는 게 아니다. 아무리 환자가 병원을 여러 군데 다닌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고행이지 쇼핑은 아니다. 병원을 가기 싫어한다. 병원을 여러곳 거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조윤미 대표(이하 조):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 왜곡은 소비자 때문이 아니라 공급체계 왜곡 때문이다.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에게 가장 최적의 서비스를 선택하는 게 소비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질, 가격, 접근성 등 모든 관점에서 소비자에게 훨씬 유리한 구조다.
사실 환자 쏠림이 본격화 된 결정적 계기는 선택진료비 폐지다. 환자 쏠림이라는 부작용이 예상됐음에도 제도는 시행됐고 관련 대책은 하나도 없었다. 쏠림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케어로 비용이 더 저렴해지니 쏠림은 여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시스템이 상급종병으로 환자를 유인 할 수밖에 없는 체계를 만들어놓고 환자가 쏠린다고 환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대책을 이야기하면 어쩌나.
김준현 대표(이하 김):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1차, 2차, 3차를 구분하기 어렵다. 대학병원에서는 전문의보다는 전공의 중심이고 입원해도 주치의를 만나기도 어렵다. 문재인 케어와 결부되면서 과잉진료의 온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환자가 찾는 이유는 동네의원을 적합하게 선택할 만한 기준과 원칙이 없다. 큰 병원이 질을 담보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공급 측면에서 대형병원의 유인수요가 있는 것이다. 의료기관 사이 질적 격차가 심하게 나고 있는데 이 격차를 좁혀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안: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다, 위기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환자 입장에서 위기감은 전혀 없다. 동네의원에 갔을 때 얻을 수 있는 메리트(merit, 장점)가 없다. 비용이 저렴하고, 가깝고, 대기시간이 짧다는 게 장점이었는데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
비용은 실손보험 때문에 차이가 없고 유명한 의원도 대기시간은 한 시간 이상이다. 대형병원은 편의시설도 잘돼 있어 대기시간이 긴 것도 크게 문제가 안된다. 근접성도 교통 발달로 크게 문제가 안된다.
복합상병 환자들은 한꺼번에 진료받을 수 있는 상급종병이 훨씬 수월하다. (상급종병은) 처방도 장기처방이 가능하다. 최근 당뇨랑 갑상선 때문에 진료의뢰서를 받아 대학병원을 가게 됐는데 동네의원은 두 달에 한 번씩 오라고 했는데 상급종병은 6개월에 한 번씩 오라고 하더라.
조: 정부 정책이 실패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공급자나 소비자 각 개인의 인식을 바꾸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이브(naive, 순진한)한 의식이다. 환자는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데 전달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착각을 (정부가) 하고 있다.
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하는 것의 질서 체계를 어떻게 확립하느냐가 핵심이다. 지금은 고비용 비효율 구조로 가고 있다. 투입되는 비용에 대한 질을 보장하는지 객관적 결과에 대한 측정지표가 없다.
안: 환자 쏠림으로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한 번 받으려면 6개월씩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정보를 국민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다. 전달체계가 붕괴됐는지도 모르겠는데 붕괴됐다고 하면 책임은 의료계와 언론에 있다. 대기가 길어지게 되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정보를 주지 않았다.
Chapter 2. "상급종병 중심, 공급자 중심의 정부 정책"
김: 가입자는 보험료 상승이라는 위험 분담을 하고도 도덕적 해이, 의료 쇼핑을 한다고 낙인찍히고 있다. 내원일수가 높은 이유는 지불보상 제도가 다른 나라와 달라서 그렇다.
현재 구조에서 동네의원에 내 건강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대형병원은 블랙홀과 같은 구조로 기형화되고 있다. 이미 왜곡된 시장에서 합리성을 찾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공급자 저항이 있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조: 지금 상급종합병원을 가면 3차 병원이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온갖 종류의 프로젝트를 다하고 있다. 금연지원센터가 왜 대학병원에 있나. 금연교육은 100병상, 200병상 병원급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부가 비용을 규모가 큰 데서 하려다 보니 온갖 종류의 정부 프로젝트, 시범사업을 대학병원이 독식하고 있다.
김: 모든 정책과 판단이 대형병원, 공급자 쪽에서 나오고 있다. R&D도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 환자가, 소비자가 무슨 소리를 낼 수 있겠나.
"Chapter 3. "전달체계 개념도 한물갔다…기능을 재편해야"
조: 의료전달체계 개념도 아주 올드하다. 규모에 따라 1, 2, 3차로 구분하는 대신 기능 재편이 필요하다. 가령, 1차 의료 기능이라고 하면 건강의 예방 증진, 만성질환의 일상적 관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병원은 허브 역할과 더불어 중증환자를 진료하고, 중간 병원은 전문병원화, 센터화해야한다. 기능 고도화로 1차 의료기능의 일정 부분을 흡수하도록 재편해야 한다.
김: 환자는 믿을 수 있는 동네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대리인 역할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 정확히 진단하고, 필요하면 이송해주는 그런 역할들 말이다. 의사가 환자 대리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붕괴됐으니 환자는 큰 병원 가면 잘 낫겠지 하는 왜곡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와 의사의 신뢰회복이 중요한데 1차적으로 건강상담을 받아야 할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당장 내가 아프면 어디를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정확하게 판단해주고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아플 때 누군가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게 문제다. 판단을 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안: 기능에 맞게 의료를 공급하고 의료를 이용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맞지 않게 하면 디센티브를 주자는 게 전달체계 재편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Chapter 4. "전달체계 가장 큰 문제는 동네의원...변화가 필요하다"
안: 의료전달체계 가장 큰 문제는 상급종병이 아니라 동네의원이다. 1차의원에서 충분히 치료도 되고 신뢰하고 내 건강을 맡길 수만 있다면 굳이 대형병원에서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왔던 게 주치의제다. 네비게이터,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관리, 질병 예방관리, 적어도 지역에 있는 의사 정도 되면 식습관 건강상담도 해주고 필요하다면 정서적 상담도 해주는 역할을 바란다. 네비게이터에다 인격적 진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물론 특정 진료과 의사가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교육도 다시 해야 한다. 1차의료 전문의사가 되려면 현재 의사들로는 절대 안 된다. 전문적인 교육이나 수련이 필요하다.
조: 1차의료 기능이 경증질환 관리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건강 유지 증진을 포괄해야 한다. 의사들은 상식적 수준을 넘어서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만들어 내야 한다.
최근 고혈압 초기 진단을 받고 채식만 하며 14kg를 감량했다. 다시 의사를 만나 다음에 뭘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살 뺀다고 소용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오더라. 고혈압 초기의 50대 여성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만 30분씩 주어져 봤자 서로 할 말이 없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로 상담을 하니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인상 깊게 들은 미국의 한 예를 들면 환자가 거주하는 동네에 어떤 운동코스가 있고, 일주일에 얼마나 운동을 하면 좋고, 운동 강도를 높일 때는 다시 상의를 해보자고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이야기해줬다. 이런 정보를 주면 누가 30분을 얘기 안 하겠나.
Chapter 5. "공급자는 기득권 내려놓고,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김: 제도가 문제라고 하면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공급자나 가입자나 각자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상응하는 위험분담과 책임을 같이해야 하는데 공급자는 전혀 하지 않는다. 정부는 공급자의 저항이 있더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토양에 대한 정비가 없이는 뭔가를 세울 수 없다.
공급 통제 쪽에서 기능분화, 병상자원관리, 의료자원 지역 배분 등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이게 전달체계의 핵심이다. 공급 부분에 대한 계획이 안 나오고 있다. 인구 대비 병상수가 급증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조: (정부는) 내부 이해관계 조정의지도 없고 소비자한테 제안해서 갈 수 있냐는 질문만 끊임없이 하고 있다. 동네의원 수술실 폐쇄도 합의 못하는 리더십이 왜 소비자한테만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제공자인 의사는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스스로 내려놓고 포기하고 제한해야 한다. 수익이 좋더라도 내 기관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병원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려놔야 한다.
안: 상급종합병원을 찾으면 본인부담률이 높아지는 경증질환 숫자 확대는 찬성한다. 하지만 효과는 없다. 환자 본인부담률을 높인다면 상급종병 수가도 깎아야 한다. 결국에는 상급종병도 손해 보는 건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는 공급자가 합리적으로 의료 제공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정보센터 구축이 그중 하나다.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사들 사진과 기본 정보라도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조: 우니나라 의료 정보는 선택에 도움 되는 방식으로 제공되는 게 아니다. 실무자가 일한 내용을 공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의사나 의료기관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내용도 아주 협소하다. 의료사고 기록이나 범죄 기록은 알 수 없다. 의료기관이나 의사에게 불리한 정보가 강제적으로 공개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300병상 이상 병원은 의료기관평가 인증을 자율적으로 받을 수 있는데 10%밖에 안 받았다. 90%는 인증을 받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자는 모른다. 인증을 안 받았으니 정보가 없어서 평가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