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여자의사 2만명 시대 빛과 그림자
의료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과 함께 의료계 진출을 꿈꾸는 여학생과 의대에 입학하는 여대생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는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타난 사회 추세의 하나다.여자의대생과 여자의사의 비율은 늘고 있지만 그들의 지위 또한 숫자와 비례해 상승해 왔을까? 한마디로 대답은 'No'다. 단단하고 견고한 의료계의 전통적인 남성중심 위계서열 구조와 도제적 시스템, 의료계 곳곳에 만연한 권위주의 풍토속에서 그들은 아직 똑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 사회뿐만이 아닌 전문직업성을 가진 의료계와 의료조직내에는 아직 여의사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그 근거 상황과 문제점을 분석해보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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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
(2)원인찾기와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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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사들 내부 문제점
"여의사들이 차별받는다고 하지만 일단 도전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거죠. 물론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외과파트쪽 지원자도 적고 일단 뽑아도 견뎌내질 못하는 걸 어떡합니까. 그러니 남자를 뽑을 수밖에 없죠." M대학병원 교육수련을 맡고있는 외과 남자 교수의 말이다.
도제 시스템적 수련 과정을 겪게 되는 의료계의 경우, 특별한 분위기와 시스템적 문화가 그들만의 삶속에 묻어있다.
메디컬 파트를 포함, 특히 서전 파트의 경우 회식이나 수술 등의 병원 수련생활이 군대에 비견 될 만큼 남자들만의 유대감과 문화가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그런 파트에 있어 여의사들이 유리천장과 유리벽 깨기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
"일을 할 때 아무래도 남자의사들이 많고, 예전부터 그러다보니 여의사가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죠. 특별한 남녀차별은 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출산휴가 등으로 몇달간 빠지게 되는 일등이 생겨나면 교수입장에서나 동료 레지던트들에 있어 부담이 되죠. 부담이 전혀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사람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여의사의 경우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공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그 문제가 자유로운 남자의사가 여의사보다는 선별우위에 서게 된다는 고대병원 성형외과 양승하 교수의 반론이다.
울산의대 학장이자 서울아산병원 소아과에서 활발한 활동중인 박인숙 교수는 "다른 조건이 같은데 단지 여의사라는 걸 문제삼아 기회에서 불평등을 준다면 그 사람이 못난거지. 하지만 여의사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기도 하는 상황을 볼 때는 화가 난다"고 말한다.
여의사들의 경우 주중에 제사준비나 육아문제, 칠순잔치 등으로 조퇴나 휴가를 받는 것 등이 그렇지 않은 남자들에 비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국내에서 첫 직선 여성 의과대학장에 선출된 기록을 갖고 있다.
"능력있고 실력있는 여의사들이 집에서 놀거나 전문의 수련 중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아주 극단적 일면이죠. 극소수이긴 하나 굉장히 우수한 인력이 결혼이나 출산 후 일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해요. 나도 여의사지만 인력을 뽑을 때 당연히 그런 점을 생각하게 되죠."라고 박교수가 덧붙인다.
그래서 솔로가 아닌 결혼한 여의사라면 시어머니나 남편 직업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솔로인 경우에는 결혼할 계획 등을 물어보게 된다고 얘기한다.
더 세심하고 친절한데다 실력도 뛰어나게 열심히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 동료나 여후배 의사에게 귀감이되는 경우도 많지만, 소수 나쁜 롤 모델이 생기면 혹시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진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
병원은 혼자 진료하는 개원의와 달리 공동 연구나 수술, 토론 등이 자주 벌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자의사회 이현숙 회장은 '여의사에 대한 의사사회의 차별은 일종의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일부 정형외과나 비뇨기과에서 인턴 때 교육수련을 시키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반면 외과파트 인력수급이 불안해진 현 시점에서 실력있는 여의사가 지원한다면 환영받을 분위기라고 전한다.
하지만 힘든 수련과정을 겪게 되는 만큼 남자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모델로 남아 강사나 교수 선임 등에 있어서의 정책적 타파를 해결할 기초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사람들과 관계를 넓히려면 직접 참여해야 합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참여해야 의견을 부르짖을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능력도 더욱 커지게 됩니다"
차별이 있다고 좌절하기 보다는 더욱 큰 참여와 실천을 통해 능력을 보여 주고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 나가라는 설명이다.
사회적 체계에 의한 벽
고대의료원 흉부외과 선경 교수는 "Women Doctor의 역량은 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대단하다고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선경 교수는 결혼이나 육아가 여의사의 능력 저하 기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구속에 의한 나이(age)가 관건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30대나 40대까지 여의사들은 정말 말그대로 '엑설런트' 합니다." 생활면에서도 펑크를 내거나 하는 비율이 남자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연구나 정리, 수술 등 결과면에서도 유의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40세를 넘어가면서 활동성이 갑자기 저하되는 동료여의사들이 많았습니다.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한 결과 그때쯤이면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남편의 사회적 지위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 되더군요."
가정에 신경을 써야하는 시기가 되면서 여의사들이 자연스레 저녁회진 등이 끝나면 학교나 병원에 남아 데이터정리나 논문 초록 작성, 연구 등을 하는게 아니라 개인적인 집안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는 것.
선경 교수는 병원이란 구조 측면에서 여의사에게 보이지않는 차별이 있기보다는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가정을 돌봐야 하는 사회적 기능측면의 문제가 파급돼 여의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기능측면의 문제와 달리 현재로서는 병원의 주요 의사결정권을 가진 파워층에 주로 남자교수가 많고 여교수나 여의사 숫자 자체가 적은 것이 의사결정권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실력과 등수로만 뽑는다면 모두 여자만 뽑아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직장이 개인화되는 등 기업 분위기와 문화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느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이야기한 상황에서 의료계 역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여자는 가족과 육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실력과 자부심을 가지고, 또 묵묵히 뜻을 세우고 실현해 나가는 거죠. 어려움이 많아 넘어지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가서 여자들의 세심함과 배려, 따뜻함 등이 의료기술면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한국여자의사회 이현숙 회장의 또다른 충고다.
금녀의 벽에 당당하게 도전
흉부외과를 비롯한 외과파트 중에서도 유독 97년까지 여의사 비율 0%를 기록했던 비뇨기과, 유독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이 과에 도전해 어려움속에서 비뇨기과 의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여의사들이 있다.
그 첫번째가 이화여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인 윤하나씨. 윤씨는 지난 99년 최초로 비뇨기과 여성전문의 1호로 탄생했다.
비뇨기과 여성전문의 2호로 서울아산병원 송채린, 이어 원자력 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김경희씨가 있다.
올해 새 여성비뇨기과 전문의가 합류될 예정이나 현재까지 비뇨기과 여성전문의는 이 3명과 그 이후 비뇨기과 여성전문의가 된 2명을 합해 총 5섯명.
이 가운데 2명은 외국에 나가있고 2명은 병원에서 근무 중이며, 김경희 씨만이 서울 명동 개원가에서 페이닥터로 활동하고 있다.
김경희씨 역시 선배 비뇨기과 여성전문의가 그렇듯 요실금과 방광염 등 여성비뇨기과 질환을 겪는 여성들이 비뇨기과가 아닌 산부인과를 찾는 점, 여성전문의의 영역과 메리트가 분명히 있음에도 '비뇨기과는 남성과'라 여겨지는 인식 등이 안타까워 비뇨기과 여성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죠. 왜 힘든길을 가려고 하느냐? 반문하면서요. 하지만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김경희씨는 처음 결정을 했던 당시를 떠올린다.
"동료 여자의사들 중에도 서전파트에 재능있고, 섬세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수술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 경우 보통 외과적 통로이면서 여성전문적 질환을 다루는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라며 웃으며 말하지만, 몰아주기 300일 당직 등을 이겨내면서 마친 수련 과정이 쉽진 않았으리라.
"조금은 전투적으로 일에 임했던 것 같아요.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지기 싫어하고 일은 확실히 마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다 저 2년차일때 1년차가 힘들다며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다시 병원에서 사는 시간도 많아졌었구요.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선배님과 교수님들께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습니다."
남자환자들이 여의사를 불편해 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충분한 설명을 해주면 환자도 납득'하므로 어려움은 없단다. 하지만 개원가에서 활동 중인 비뇨기과 여전문의의 선례가 없어, 앞으로 자신의 행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전해준다.
김경희씨가 일하고 있는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예전에는 지원자도 없었을 뿐더러 '비뇨기과 여전문의'라는 개념자체도 없었지만, 이제는 배뇨장애나 여성성기능 장애 파트 등, 관련 분야 개척이 이뤄지고 수요도 많다"고 들려준다.
이어 "일부러 내 친구나 후배의 가족들이 여의사를 찾아 병원에 들리기도 한다'며 "세심한 수술, 처치와 함께 상담 등에서도 환자들을 더욱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 등을 보면 오히려 여의사라는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내부 중추적 역할을 하고있는 여의사 모델 케이스
고대 안암병원 내과 김형규 원장은 "차별의 벽이 있다. 결혼 후 가정생활, 육아문제 등으로 여의사들은 분명히 영향을 받고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여의사들은 자연스레 가정생활에 지장을 덜 주면서 응급수술, 응급환자와 입원환자, 의료사고 등이 적은 반 외과계통을 선호,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육아문제 만큼은 사회가 지원해서 해결해 주는 대책이 나와야 자연스레 여의사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외과계통 지원자도 많아질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 대학과 학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여의들이 늘어나면서 여의사들의 입지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의료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내며, 귀감이 될 만한 모델링 케이스 여의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병원 외과 박귀원 교수, 병리과 이현순 교수, 진단검사의학과 박명희 교수 등은 교수임용 성비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서울대' 굴레를 깨고 의대 안에서 꾸준히 여교수 활동이 키우고 있다.
이어 경원대 총장 겸 길 의료재단 회장인 이길여 총장, 의대학장선거에서 국내 첫 여성 직선 의대학장에 61.4%라는 높은 득표율로 선출된 울산의대 박인숙 교수, 300여 회원중 200명이 넘는 회원 찬성 경선을 통해 당당히 회장에 취임한 대한 검안학회 이원희 회장 등이 좋은 예이다.
근골격 기형전문에 탁월한 방사선과 김옥화 선생, 차병원 산부인과 이숙환 선생, 분당차병원 소아과 박혜원 교수, 신촌세브란스 해부학 교실 박경아 교수, 고대 해부학 박해림 교수도 연구성과 측면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런 여의사들이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원혜성 의사, 박금자 전 민주당 국회의원, 한나라당 안명옥 국회의원, 이 밖에 국제 여자의사회 부회장을 맡으며 서태지역(일본 필리핀 대만 등 7개국) 회장으로 활동중인 한국여자의사회 이현숙 원장 등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오는 2월 1일부터 이화여대는 의대 목동병원장으로 활동할 방사선종양학과 서현숙 교수, 주양자 전 복지부 장관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롤 모델 들이다.
제도 변화와 함께 남녀 인식전환 선행돼야
“무엇보다 끈기와 도전정신, 더 나아가 투쟁정신도 필요합니다.”
방안 모색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많은 여의사들이 ‘이정도면 되겠지’하는 순간, 자신의 좋은 재능을 십분 발휘 할 수 없게 된다며, 너무 쉽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의사가 가진 아이디어와 추진력, 세심함을 드러내라는 것. 그렇다고 투사나 페미니스트가 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의사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없애려면 일단 남녀 모두의 인식 전환과 함께 현실적으로 육아 등을 보조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 변화, 그리고 여의사들 자체가 좀 더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에 뛰어드는 자세 등이 요구된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와 여의사가 있더라'가 아닌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냥 의사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의사에 대한 남녀 서로간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질 때, 의료계의 현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고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대안을 찾아내는 파트너로서 남녀가 함께하는 현명한 의사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