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대형병원 암전쟁, 약인가 독인가
국내 대형병원들이 잇따라 암센터 건립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국립대병원들도 지역암센터를 속속 개원하면서 암 경쟁력 강화론과 병원 과잉공급과 중대형병원 경쟁력 하락으로 인한 위기론이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병원의 암센터 확충과 문제점, 공존 대안은 없는가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대형병원 암전쟁, 그들만의 잔치
2.떨고 있는 중대형병원과 암전문의
3.의료체계 정상화, 상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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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화, 환자 부담만 가중 우려
대형병원들이 암센터 건립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진료과 중심에서 환자 중심의 협진체계 정착이다.
다시 말해 암환자가 진단과 수술, 항암치료 등을 받기 위해 진료과를 전전해야 하고, 심지어 종양내과가 아닌 외과 의사들이 항암제를 투여하는 등의 전문화, 분업화되지 않는 진료행태를 바로 잡아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암 종류별로 내과와 외과, 신경외과, 방사선종앙학과, 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진단방사선과 등의 전문의들이 한팀을 이뤄 함께 환자 치료방침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병원들이 현재 협진체계를 실험하고 있지만 진료과간 갈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지금까지 진료과 중심으로 환자를 봐 오면서 내 환자란 인식이 깔려있고, ‘내가 최고’란 의식이 팽배해 협진에 익숙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외과계 중심의 임상종양연구학회와 종양내과 중심의 임상암학회가 항암제를 누가 투여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대학병원 내 진료과간 협진 환경을 정착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는 대형병원들이 암센터를 건립한다 하더라도 진료과 중심 시스템이 극복되지 않으면 병원 덩치만 커질 뿐 실제 환자에게 돌아갈 이득은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의료기관의 대형화는 지방환자 증가, 각종 고가 검사의 확대 등으로 이어져 환자의 진료비 부담만 가중시킬 소지도 있다.
국립암센터 "진료과는 없다"
따라서 병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병원내 진료시스템을 개선하고, 대형병원과 1,2,3차 병원간 협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국립암센터와 원자력의학원은 좋은 본보기로 꼽을 만하다.
지난 2000년 설립된 국립암센터에는 내과, 외과, 방사선과 같은 진료과가 없다. 대신 간암, 폐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등 11개 진료센터가 있고, 각 센터마다 외과 전문의, 종양내과 전문의, 방사선과 전문의, 간호사가 배치돼 환자를 맞는다.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은 “우리 병원은 세계 최고가 되지 않으면 도태되며, 그래서 먼저 모든 병원에 존재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 등의 ‘진료과’라는 것을 전부 폐지했다”고 강조했다.
위암센터, 간암센터 등 장기별 센터에 여러 전문의들이 함께 소속되어 회진을 같이 돌고, 진료방침을 정한다는 것이다.
간암환자가 있을 때 외과의사는 ‘수술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내과의사는 ‘수술 안하고 주사나 고주파면 다 해결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료과 중심 시스템에서는 본인이 속한 과의 수익을 의식해 서로 자기과 환자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확실히 결론 낼 수 없으면 가급적 자신과에서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간암센터를 만들어 내과, 외과 등 간암 전문의들이 함께 근무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면 서로 협력해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가장 적합할지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 박 원장의 설명이다.
환자 중심 진료시스템 구축 시급
국립암센터가 의료진간 협진 구축에 성공했다면 원자력의학원이 건립중인 부산 동남권분원은 병원간 협력체계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원자력의학원은 동남권분원을 300병상의 크지 않은 규모로 건립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원자력의학원 관계자는 “동남권분원을 소규모병원으로 짓는 것은 우리가 모든 암환자를 독식하지 않고 지역 병원과 협진체계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난이도 암환자의 급성기수술만 동남권분원이 맡고, 이후 타 병원이 환자를 케어할 수 있도록 해 병원계는 상생을 도모하고, 환자는 거주지 인근에서 적정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경쟁을 촉진하되 일방적인 힘에 의해 의료시장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노력과 함께 병원계가 환자 중심 진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이것이 병상 확충 못지않게 시급하다. #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