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연구환경 대수술 시급하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논문 조작사건이 불거지면서 연구자들의 윤리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열악한 연구환경과 단기적 성과 중심의 연구풍토를 지양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우려 역시 높다. 국내 의과학자들의 연구 고충을 들어보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잘 나가는 교수도 연구비 없어 허덕
②단기간 연구업적 못 내면 도태
③기부 늘리고, 10년을 내다보자
교수당 연구비 서울대 1억, 신설의대 650만원
한국의대학장협의회(회장 정풍만)가 지난해 1월 발간한 ‘2004~2005년도 의대교육현황’ 자료를 보면 의대 교수들의 연구 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대는 2003년 한해 교외 연구비와 학내(병원 포함) 연구비를 포함해 총 397억원을 조성, 41개 의대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이를 전체 의대 교수 1인당 연구비로 나누면 1억914만원에 달한다.
연세의대는 같은 해 총 241억원을 연구비로 확보해 전체 교수 1인당 연구비가 5646만원으로 비교적 많았다.
이들 의대를 제외하면 전체 교수 1인당 연구비 규모는 성균관의대가 3208만원, 경북의대가 2600만원, 가톨릭의대가 1970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이들 의대들은 연구 환경이 나은 셈이다.
가천의대나 강원의대, 을지의대 등은 전체 연구비 규모가 10억원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체 교수 1인당 연구비가 많아야 65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기부문화 시급, 장기연구 확대
이에 따라 의대 교수들은 연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부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울산의대 전상용 교수는 “첨단 연구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전세계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번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가기 힘들다”면서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중립적 기부문화를 정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정부 지원 연구비와 민간 후원금 가운데 70억원을 부당하게 관리했고, 이중 25억원을 횡령하거나 유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기부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 역시 중요하며 감시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연구비 예산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강남성모병원 김태윤 교수는 “복지부가 연구비 예산을 늘려, 미국처럼 임상연구 승인이 떨어지면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외국의 환경, 자본, 인력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소 뒷발로 쥐 잡는 격’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단기 연구과제를 중심으로 연구비를 지원할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장기연구를 확대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가톨릭의대 주천기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금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기초 연구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일본은 기업에서 대학에 연구 투자를 할 때 회사 연구원을 파견해 함께 연구에 참여하도록 한다”면서 “이를 통해 기업은 연구 노하우를 배우고, 연구자들은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상생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안과병원의 신선한 실험 주목
이런 측면에서 건양의대 김안과병원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김안과병원 김성주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병원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안과전문병원이란 명성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는 것은 연구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올해 명곡안연구소에 전문 연구인력을 보강해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원장은 “대부분의 연구소들이 외부 연구를 수주하다보니 단기적인 성과를 내놓는데 집착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자체 펀드를 조성, 망막이나 녹내장 등 현대 의학수준으로 치유 불가능한 분야의 원인을 규명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안과병원은 향후 10년간 매년 1억원 이상을 명곡안연구소에 투자할 계획이지만 단기적 연구업적을 요구하지 않을 방침이다.
연구자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의대 변광호 교수는 “연구비 부담을 갖지 않는 교수가 누가 있겠느냐”면서 “현 시스템에서 이런 연구풍토는 연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인 만큼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변 교수는 “연구자도 사람이다 보니 타성에 젖게 마련”이라며 “SCI 논문을 중심으로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없다면 이 또한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연구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