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제비에 대한 정부의 위기감은 실제 현상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정책실패에 따른 부담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약, 의료소모품 등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상 국내 약제비는 OECD 국가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은 아니며, 의약분업 따른 약제비 절감 실패와 건강보험재정 악화로 인해 정부의 위기감이 지나치게 고조된 측면이 있다는 것.
연세대 이규식 교수는 18일 건강복지사회를여는모임 주최로 열린 '5.3 약제비 적정화 대책' 정책토론회에 참석,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이 교수는 먼저 국내 약제비 수준이 정부가 우려하는 만큼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2004년 현재 전체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국내 약제비 비중은 현재 27.4%로, OECD 국가 평균인 17.7%를 상회하는 수준이지만, 이는 국내에서 의약품을 과다하게 소비해서라기 보다는, 전체 국민의료비 규모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작기 때문이라는 것.
이 교수는 "의약품 가격은 국제적으로 표준회되어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의료비 규모가 적은 국가일수록 약제비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비급여 약제비의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것이 약제비 비중을 상승시키는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한방약이 비급여에 포함되는데다, 의료소모품비도 만만치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이 교수는 "2004년 현재 국내 의료소모품비는 OECD 평균의 4배에 달하며, 전체 국민의료비에 대한 한방약의 비중은 4.3%에 달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제외하면 국민의료비 대비 약제비중은 20.7%까지 낮아진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에 대한 비 처방약제비의 비중은 2004년 현재 7%로, 캐나다(1.6%), 프랑스(2.1%) 등에 비해 3배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약제비에 위기감을 갖는가? 이 교수는 정책실패에 따른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보험진료비 대비 약제비가 2001년 23.5%에서 2004년 28.4%로 늘어나는 등 의약분업이 약제비 절감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데다, 건강보험 통합 및 의약분업으로 보험진료비가 매년 급격히 늘어나 건강보험재정악화로 이어지다 보니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이라며 "일정부분 보험자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를 약제비에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위기감이 의약품 관련 규제로 이어지는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으며, 특히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추진중인 의약품 선별등재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교수는 "등재에서 제외되는 의약품은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선별등재제도는 가장 강력한 규제 수단이 될 것"이라며 "아울러 의사들의 처방권이 제약되고, 의사들의 임상적인 경험이 경제학자들의 비용-효과 분석에 밀려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도의 효용과 관련해서도 "선별등재제도를 택한 국가로서 약제비를 절감하는 국가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국가도 있다"며 "선별등재제도는 약제비 절감효과와 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