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사진)을 놓고 적통 논쟁을 펴고 있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최근부터 원내외 모든 공문과 인쇄물에 ‘광혜원·제중원 122년’ 문구를 확대 사용토록 했다.
이에 대해 연세의료원 관계자는 11일 “이는 광혜원(제중원)이 연세의료원의 전신임을 부각시켜 우리의 정체성,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부터 공문과 인쇄물에 연원을 사용해 왔지만 확대 사용키로 한 것은 광혜원이 연세의료원의 뿌리라는 것을 재확인하기 위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이 광혜원의 전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서울대병원이 내년 3월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사업을 의식한 측면도 없지 않다.
서울대병원은 이번 기념사업을 통해 제중원에서 대한의원으로 이어지는 서양의학 수용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정체성을 정립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7월 병원사연구실을 발족, 의학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내년 3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근대의료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역사를 재조명할 예정이다.
그러자 연세의료원 내부에서 서울대병원의 이런 움직임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이 광혜원을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해 서울대병원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을 앞두고 한국 의학사를 재조명하는 학문적 논쟁에서 벗어나 감정싸움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