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료원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첫날인 17일, 환자들의 기피현상과 국립의료원의 홍보 부족 등으로 성분명 처방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의료계의 반발을 딛고 시작한 시범사업 치고는 아직 초라한 모습이다.
이날 시범사업은 의료계의 반대시위로부터 시작했다. 이날 오전 8시 대한의사협회 주수호 회장, 유희탁 대의원회 의장, 16개 시도의사회장 등 의협 대표자 20여명은 국립의료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정부와 국립의료원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강행을 규탄했다.
이들은 환자들에게 제품명으로 의약품을 요구하라는 전단을 배포했는데, 환자들이 관심있게 읽어보는 모습이 눈에 꽤 띄었다.
시범사업, 의료계 규탄 시위로 시작
하지만 9시를 넘어 진료가 시작되면서 성분명 처방은 시작됐다.
시범사업은 의료진이 "처방 품목 중에 성분명 처방으로 되는 품목이 있습니다. 성분명 처방으로 받으시겠습니까? 기존대로 제품명으로 받으시겠습니까?" 묻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환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제품명이든, 성분명이든 선택하면 된다.
성분명 처방을 선택한 환자는 약국을 방문하는데, 약국에서도 현재 성분에 따른 약품들을 표로 보여주면서 환자들이 약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의사, 약사 모두 시범사업에 대한 부담 탓인지 최대한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환자를 응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환자들이 의·약사의 약 선택요구에 부합하는 지식을 갖췄는지, 또 충분한 설명이 진행됐는지는 의문이다.
의·약사 "환자가 약 선택하세요"
실제로 성분명 처방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오전 11시까지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D문전약국 나온 성분명 처방은 총 3건으로 라니티딘 2건, 아세트아미노펜 1건이 전부다. K약국은 성분명 처방으로 2건이 나왔다.
더군다나 이 중 4건은 기자들이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취재를 위해 받은 것이고 단 한 건만이 실제 환자가 처방받은 것이다.
K약국 관계자는 "단골환자가 성분명 처방(기넥신정)을 가지고 왔는데, 환자가 기존대로 조제받기 원해서 기존대로 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선택하라고 물으면 당연히 성분명 처방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정착되려면 적어도 6개월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의사의 선택 요구에 환자들은 제품명으로 처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 약을 처방받은 40대 아주머니는 "의사에게 제품명으로 약을 달라고 했다"면서 "아이 먹는 약인데, 어떻게 바꿀 수가 있냐"고 말했다.
환자들의 반응도 대체로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성분명 처방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약을 바꿔준다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60대 김모씨는 "의사가 피도 뽑고, 검사도 다하는데, 약사가 약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면서 "이러면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깨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성분명 처방, 오전 11시까지 1건 불과
한편 이날 국립의료원측은 부담탓이었는지 성분명 처방에 대한 안내전단 하나 마련하지 않았다. 의료진에게도 별다른 지침이 내려지지 않아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국립의료원 강재규 원장은 "공지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2주동안 준비를 해왔고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여곡절끝에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은 시작됐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