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병원 내부에서 임의비급여사태와 관련, 생명 존중이라는 가톨릭정신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모병원 관계자는 16일 “170억원에 달하는 행정처분과 부당청구를 해 왔다는 지탄에도 불구하고 백혈병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요양급여기준을 어기면서까지 가톨릭 정신을 실천해 왔는데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게 뭐냐”고 토로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성모병원은 지난해 말 백혈병환우회의 임의비급여 실태 폭로에 이어 복지부 실사, 28억원 환수 및 149억원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성모병원은 7월말 복지부로부터 169억원에 달하는 행정처분 예고를 받은 이후 △요양급여기준 초과 △식약청 허가범위 외 약제 사용 등을 자제하고, 가급적 요양급여기준에 따라 진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상당수 환자와 보호자들은 이런 약제나 치료재료를 비급여 처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복지부에 잇따라 탄원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다시 실사를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당장 위급한 백혈병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없다며 문제가 된 약제와 치료재료 사용을 일부 재개했으며, 환자들의 탄원사태도 수그러들었다.
건강보험제도보다 생명 존중이라는 가톨릭 정신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원칙을 일부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공단이 성모병원에 지급할 10월 요양급여비에서 임의비급여 진료비 19억원을 상계처리해 민원을 제기한 환자들에게 환급해 주겠다고 통보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될 조짐이다.
성모병원의 A교수는 “임의비급여 사태 이후 병원의 손실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와 있다”면서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체가능한 약제와 치료재료만이라도 건강보험기준에 맞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골수검사바늘이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골수검사비용은 3만 2천원이며, 검사에 사용되는 바늘은 골수검사비용에 포함돼 있어 재사용해야 한다.
성모병원은 재사용 바늘을 이용할 경우 바늘 끝이 무뎌지고, 감염의 우려가 있자 1회용 바늘로 대체해 왔지만 바늘 구입비 5만5천원을 환자에게 임의비급여해 오다가 복지부 실사에서 적발됐다.
그렇지만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지금도 의사 윤리상 재사용바늘을 쓸 수 없다며 1회용 바늘을 고집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환자에게 비용을 받지 않고 심평원에 청구한다는 것이다.
병원으로서는 심평원에 청구해봐야 100% 삭감되기 때문에 1년에 2억원에 달하는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A교수가 1회용 검사바늘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병원 손실을 우려한 측면도 있지만 절망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정신을 실천하다보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성모병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환자들의 민원은 계속되고 있어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보건복지부가 임의비급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그는 토로했다.
성모병원 관계자는 “우리가 가톨릭정신에 따라 환자 진료에만 매진해 왔지만 욕은 욕대로 먹고, 병원 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심지어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조용히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까지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성모병원이 생명존중 원칙에서 벗어나 복지부 기준에 충실한 진료를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다만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부당청구 기관이라는 불신이 계속된다면 ‘조용한 대응’을 수정해야 한다는 내부 압력도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