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추계학술대회가 끝나가고 있다. 학술대회는 연구 성과를 토론하는 축제의 자리이지만 상당수 학회에서는 저수가 문제, 정부 부처의 회무 투명성 압박 등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기도 했다. 반면 논문의 질을 높이거나 국제학회를 유치하는 개가를 올린 학회도 적지 않았다. 본지는 이번 추계학술대회 이슈를 정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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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구도 좋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 (중)투명성과 연구 촉진…실험대 선 학회
(하)국제학회 유치·SCI 학술지 등재 사활
올해 초 일부 학회 사무실에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학회가 각종 세금을 포탈하고 있다며 관련 서류를 모두 가져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해당 학회 뿐만 아니라 대한의학회까지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성형외과학회 등 세무조사를 받은 학회들은 수억원의 과징금을 내야할 처지에 놓인 것.
학회에 겨눠진 정부 칼날···학회들 "너무 한다"
해당 학회들은 이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순수 비영리 학술단체이다보니 영수증 처리에 신경쓰지 못했던 것일 뿐인데 범법자 취급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성형외과학회 관계자는 "국세청에서 급작스레 세무조사를 나왔고 비영리 학회가 제약사로부터 부스 설치비 등 학술대회 후원금을 받은 것을 문제삼았다"며 "부스설치비가 부가가치세 부과대상이라는 사실도 이날 처음 알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학술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회가 뻔히 규모가 드러나는 학술대회 후원금을 탈세하려 했겠느냐"면서 "학회가 부동산 임대업자가 된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다른 학회들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회 후원금도 영리사업에 포함되며, 부가가치세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세무조사를 받은 대다수 학회들은 수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예고받았다.
법인화 등 대책 분주···회계 투명화 발판 마련
결국 이들 학회들은 세무당국이 의학 학술단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뭇매를 맞고 난 뒤에나 깨닫고 서둘러 대책마련에 나섰다.
관행적으로 영수증 처리 없이 운영하던 회무방식에서 벗어나 떳떳이 세금을 내고 활동하는 방안을 신속히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의학회를 비롯, 세무조사로 직격탄을 맞은 성형외과학회 등 많은 학회들이 법인 전환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대다수 학회들은 영리법인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는 대전제에 공감하고 있다.
더이상 주먹구구식으로 학회를 운영해서는 오히려 정부나 국민들에게 불신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학회들의 변화에는 의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와 국민 모두 이제는 의료업을 '의술'이라기 보다는 자영업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세무조사는 이러한 정부의 시각 변화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됐다. 학회를 비영리 학술단체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수입과 지출이 존재하는 사업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오히려 지금에서야 사업자로 등록하고 세금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오히려 한발 늦은 결정이었다고 자책하는 학회들도 있다.
2년전 법인전환을 마친 소화기학회 관계자는 "대다수 학회들이 이처럼 정부의 칼날에 넋놓고 당한 것은 그만큼 학회가 '돈'과는 별개의 기관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학회도 엄연히 수입과 지출이 존재하며, 회계 투명화를 위해서라도 법인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세금 감면 등 정부의 뒷받침 수반돼야"
하지만 학회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의학발전을 이끌어온 학회의 순수성은 인정하고 일반 영리단체와 다른 시각으로 학회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다수 학회들이 지원금 대부분을 학술행사나 전공의 연수교육, 해외학회 출장비 등 학술적 사업에 사용하고 있는 만큼 세금감면 등의 혜택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성형외과학회 김우경 이사장은 "대다수 학회들은 학술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돈을 투자하며 노력하고 있다"며 "이러한 열의를 무시한 채 그저 구성원이 돈을 버는 '의사'라는 편견으로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학회 정영화 총무이사는 "학회가 후원금을 개인용도로 전용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투명하게 영수증 처리를 한다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소화기학회 정현채 총무이사는 "비영리로 운영되는 학술단체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사업체와 동일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겠느냐"며 "교회 등 종교법인과 같이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감면해주는 정부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는 의료계, 그 안에서 학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찬반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알 수 있 듯 더이상 시대의 변화를 거부해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제 학회의 화두도 변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변화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