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의사’라고 하면 출시된 제품을 홍보하는 단순 업무로 이해하는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제약의사의 업무는 단순한 학술과 홍보 뿐 아니라 신약개발부터 제품구매를 위한 비니지스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펼쳐져 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등 10년의 생활을 거친 많은 의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걸맞는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는 형국이다. 제약의학회(회장 이일섭, GSK 부사장)의 협조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약 10회에 걸쳐 학술과 마케팅, 제품개발, 약가 등에서 자신의 꿈을 일궈나가는 제약의사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교수 시절에는 이미 지어있는 집에 들어갔다면 이제는 설계에서 시공까지 임상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병원 교수직에서 제약계에 뛰어든 한국오츠카 김범수 상무(46, 연세의대 87년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성취감을 이같이 밝히고 또 다른 인생여정을 피력했다.
김범수 상무는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 부교수로 96년부터 2006년까지 재직하다 BMS 메디칼 상무로 제약계에 첫 발을 디딘 후 지난해 6월 일본 다국적제약사인 한국오츠카로 자리를 옮겨 임상개발 책임자를 맡고 있다.
김 상무는 “소화기내과의 특성상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구와 논문에 매진하면서도 제대로 된 임상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더라구요. 그래서 제약사에 있던 이일섭 선배(현 GSK 부사장)를 찾아가 제약의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죠”라며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많은 임상에 참여했지만 할 수 있는 연구 분야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다국가임상을 수행하면서 많은 보람도 느꼈지만 지금처럼 1상부터 4상까지 전체를 그려가며 집을 짓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제약사에 입사한 후 김범수 상무가 실감한 부분은 한국의 임상능력이 선진국에 못지않을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외자사, 빠르고 정확한 한국 임상 선호“
김 상무는 “외자사들이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는 임상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점입니다”라고 전하고 “과거 미국 등 선진국에 임상이 치중됐다면 이제는 비용과 효과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한국의 임상능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거죠”라며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 업체의 높아진 관심도를 반증했다.
일례로, 2006년 6건에 머물던 한국 참여 임상 건수가 07년 12건, 08년 17건, 09년 19건 등으로 3배 이상 증가세를 있으며 지난해 10월 미국오츠카의 임상자격 심의에서 ‘한국 인정’이라는 신뢰를 구축한 상태이다.
그는 “자국에 국한되던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중심으로 ‘한-중-일’ 3개국을 통합하는 임상을 추진하고 있어요”라며 “이는 전문지식을 보유한 의사의 중요성으로 대두돼 업체마다 의사 인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의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김 상무는 “과거 교수들이 은퇴후 업체의 자문역할을 맡았다면 현재는 30~40대 젊은층의 참여가 증가한 개척분야”라고 전제하고 “의사가 모든 질환군을 담당했다면 이제는 순환기, 내분비, 종양 등 전문화되는 추세”라며 제약 학술분야의 판도변화를 내비쳤다.
그는 “제약계에서 느낀 점은 의대 졸업 후 바로 경영코스를 밟고 입사한 후배들이 교수직을 경험한 저보다도 현장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학술분야는 임상경험이 필요하나 마케팅이나 개발 등 다른 분야는 현실에 부합되는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고 업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후배의사들의 활약을 높게 평가했다.
의사의 강점으로 김범수 상무는 “약제에 대한 환자의 안전성을 누구보다 가장 가깝게 인지하고 있는 점”이라며 “이는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제약사의 안전장치라고 볼 수 있죠”라며 학술 책임자로서의 자부심을 피력했다.
김 상무는 “제약의 학술이라면 단순히 의학적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케팅과 제품 영업 등 매출을 위한 다양한 부분을 포괄한다고 봐야죠”라고 언급하고 “교수시절에는 영업사원이나 PM이 전해주는 단순한 정보에만 국한됐다면 이제는 본사를 통해 포괄적인 정보를 빠르게 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3#"후배의사, 진료 외 가능성 열어둬야“
그는 미래를 걱정하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 찾기를 조언했다.
김범수 상무는 “후배의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진료에만 국한하지 말고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합니다”라며 “진료실이 아닌 곳에도 가능성을 열고 인생계획을 다각도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라고 교수직을 거친 선배로서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 “분명한 점은 제약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여기에 근무하는 의사는 약제의 안전성과 윤리성을 담보해야 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 업체의 전체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의사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의대 교육과정 중 제약 등 진료 외 분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겁니다”라며 “교양과목에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하는 강의라던가 제약사 현장실습 등 의대생들의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제언했다.
교수직의 특권을 버리고 제약의사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김범수 상무는 배구경기에서 색깔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리베로’(Libero)처럼 의사의 전문성을 토대로 조직내 전담 수비수로서 오늘도 값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