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사각지대 내몰린 전임의
임상교수가 되기 위해, 보다 전문적인 의료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전임의들. 그러나 레지던트보다 못한 수련환경과 저임금, 불안한 미래에 내몰리고 있다. 수련병원 역시 고급 의료인력을 값싸게 이용할 뿐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전임의들의 현실을 진단하고, 제도개선방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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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공의보다 못한 값싼 노동자
<중>일용직 신세, 순혈은 또다른 벽
<하>불안한 미래…그래도 꿈은 있다
대학병원들이 2009년도 전임의 모집을 완료했다.
대부분 대학병원의 공통점은 각 진료과별 모집인원을 명시하지 않은 채 ‘약간명’ 내지 ‘00명’ 식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집인원을 정해놓지 않고 사정이 되는대로 일단 뽑고 보자는 표현이 어쩌면 더 정확하다.
정원 없는 전임의…“일단 뽑고 보자”
물론 S대병원이나 H대병원처럼 각 과별 정원을 정해 전임의를 모집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형병원일수록 전임의 모집인원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무급 전임의를 늘리고 있다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서울의 모대학병원의 전임의 모집 경향을 보면 2007년 239명에서 2008년 255명, 2009년 284명으로 계속 증원하고 있으며, 이중 무급이 44명, 61명, 79명으로 증가 추세다. 서울의 또다른 대학병원도 2008년 279명에서 2009년에는 312명으로 크게 늘렸다.
지방의 모대학병원은 2008년 25명에서 2009년 28명으로 3명 증원했는데 유급을 1명 줄이는 대신 4명을 무급으로 뽑았다.
전공의 수련 더 부실화 초래
대학병원들이 전임의를 대거 채용한 결과 전공의 교육은 더 부실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K대병원 외과 교수는 “의료가 점점 더 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에 전임의제도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면서 “문제는 의료인력 수급 차원에서 전임의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보다 전문화된 의료인력이나 예비 교수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취지에서 정예화된 인원을 선발하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전임의를 채용하다보니 전공의 교육 부실화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학회 차원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질타했다.
전공의 수련의 부실은 다시 전임의 과정을 필수화하는 고리로 작용한다.
외과 전임의 S씨는 “전공의들은 전임의에 밀려 수술방에 들어갈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그러다보니 전임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면서 “전임의를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임의 희망자가 넘쳐나고, 개원이 어렵다보니 대학병원들은 정원을 정해놓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값싼 전문의를 쉽게 모집할 수 있게 된 결과다.
턱 없이 낮은 월급, 교수는 바늘구멍
하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전임의 자신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임의 월급은 많게는 500만원 이상, 적게는 300만원도 안되는 병원이 태반일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한 집안의 과장이라면 사정은 더 참담하다.
전임의 K씨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전문의 평균 급여의 70%선은 맞춰줘야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외과 전임의 1년차인 H씨는 “전공의들은 당직실이라도 있지만 전임의는 연구할 공간도 없는 곳이 태반”이라면서 “다행히 우리 병원에는 책상과 컴퓨터는 갖춰져 있지만 연구 시설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교수로 발탁되는 것 역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전임의 L씨는 “아무리 오래 버텨도 전임교원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면서 “전임의 중 교수가 되는 것은 10%도 채 안되고, 대부분 이렇게 생활하다가 밥벌이를 찾아 떠난다. 비참한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체계화된 전임의 수련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L씨는 “전임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없다보니 결국 전공의화된다”면서 “학회 차원에서 기본 수련 프로그램을 제정해 전임의를 값싼 전문의로 치부하지 않고 수련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전임의 처우나 근로환경 등에 대해서도 병협이나 학회가 방관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임의들의 근로환경, 처우, 수련프로그램 등이 관리 사각지대에 내몰리다보니 수련 연한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전임의 P씨는 “상당수 병원들이 교수를 시켜주겠다며 4~5년, 심지어 10년씩 부려먹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면서 “병협이든 학회 차원이든 규정을 정해 일정한 시한 안에 교수가 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도록 해줘야 한다”고 질타했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자기 스스로 전임의를 선택한 만큼 그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수 안되더라도 존중받고 싶다”
전임의들은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서서히 불안해진다. 임상강사로 발탁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전임교원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한해 더 병원에 남아 있을지, 병원을 떠날지 결정을 해야 한다.
외과 전임의 2년차인 K씨. 그는 올 한해 1년 더 전임의를 하기로 했다.
교수가 되고 싶어 전임의를 하고 있지만 막상 자리는 없고, 종합병원 봉직의로 갈까 생각해봤지만 미련이 남아 1년 더 버티기로 했다는 것이다.
K씨는 “월급도 적고, 연구환경도 열악하다보니 어쩌면 레지던트만도 못한 처지가 전임의지만 그래도 꿈을 안고 살고 있다”면서 “교수로 채용하지 않더라도 있는 동안 보다 나은 술기를 배우고, 존경은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존중받으면서 생활하고 싶은 게 소박한 바람”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