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처방전을 발행했다면 고의 또는 중과실에 해당하는 귀책사유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공단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원외처방 약제비를 의료기관에서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정한 서울서부지법의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얘기다.
고려의대 명순구(법학과) 교수는 19일 오후 있을 심평포럼에 앞서 공개한 발표문을 통해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명 교수는 의약분업 시행으로 처방과 조제의 주체가 달라졌으므로, 현행 건보법 제52조를 근거로 공단이 의료기관에 대해 초과약제비 징수처분을 할 수 없다고 본 법원의 입장에는 동의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를 '약제비 징수처분 무효'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해 부적절한 원외처방을 함으로써 건강보험공단에 손해를 발생시켰는가의 문제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것.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 민법에 의거 인과관계를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서울서부지방법원판결은 귀책사유와 위법성 요건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서 "원고인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은 원과와 환자사이의 법률문제일 뿐 위법성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민법상의 개념으로 보자면 의료기관이 처방전을 발행한 사실은 고의 또는 중과실, 다시말해 귀책사유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명 교수는 "의료전문기관인 원고는 자신의 그 같은 처방행위가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에 손실을 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거나(고의) 혹은 통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중과실)"면서 "따라서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에 의한 공단의 상계항변은 법적으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명 교수는 요양급여기준 위반행위 자체를 위법행위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그는 "요양급여기준은 의학적 타당성과 건강보험제도의 유지 사이의 조화점을 제시하는 법규명령이자 강행규정"이라면서 "이는 대외적·일반적 구속력을 가지므로 그 위반을 곧 위법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급여기준을 위반해 처방전을 발행한 행위는 앞서 언급한 귀책사유는 물론 위법성 요건에서도 민법이 정한 불법행위 요건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명순구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19일 오후 열릴 심평포럼에서 발표할 예정. 심평원은 이날 고려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원외처방 약제비 관련 법적 쟁점'을 주제로 포럼을 열고, 이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