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1개 의대 전임교원이 1만명에 육박하면서 교수당 학생수가 1명인 시대가 임박해지고 있다. 이처럼 양적 증가가 두드러지자 교육과학기술부가 전임교원 수술에 들어갔고, 일부 의대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다 일부 병원들이 전임교수를 우수인력 유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의학계 내부에서조차 진입장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의대 전임교수제도의 문제점과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전임교원 남발…의대 없는 병원만 서럽다
(중)논문 1편 안쓰고, 교육 등한시해도 교수님
(하)진입장벽 없는 학생교육병원 수술 시급하다
"지방 병원에서 우수한 임상의사를 모시려면 교수 지위는 보장해 줘야 하는 게 현실 아니냐." A의대 학장의 하소연이다.
의대 전임교원 1만명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정부가 1997년 가천, 성균관, 을지, 포천중문 등 4개 대학에 의대를 인가하면서 전국 의대는 41개로 늘어났고,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대학장협의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5월 기준으로 전국 의대 전임교수는 모두 6822명.
이로부터 9년이 지난 2007년 5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의대 전임교원이 9404명이라고 발표했다. 10년이 채 안된 사이에 38%나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연세의대, 경희의대, 건국의대 등은 의대 부속병원을 크게 증축하거나 추가 건립하면서 임상 교수를 대폭 증원했다.
주목할 대목은 의대 부속병원을 두지 않고, 같은 재단에 속한 의료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 병원과 교육협력병원 협약을 맺은 후 학생 교육을 위탁시키는 의대일수록 전임교수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천의대는 이 기간 전임교원이 8.6배 늘었다. 가천의대는 학교법인인 대학 부속병원이 없다.
가천의대는 길병원, 동인천길요양병원, 남동길병원, 철원길병원 등 4개 의료법인에 전임교원을 파견해 학생 실습교육을 시키고 있다.
관동의대도 같은 기간 전임교수가 4.8배 증가했지만 166명의 전임교수들은 의대 부속병원이 아닌 의료법인인 명지병원과 제일병원에서 근무한다.
을지의대는 학교법인인 을지대 부속병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을지학원 소속이면서 별도의 의료법인인 을지병원과 금산을지병원에도 전임교원들을 파견하면서 전임교원이 2.1배 늘었다.
CHA의대는 구미차병원이 학교법인으로 등재돼 있다.
이와 별도로 CHA의대는 강남의 차병원, 분당차병원, 대구여성차병원 등 4개의 의료법인과 교육협력병원을 맺고 전임교원을 파견하고 있는 상태다.
울산의대 역시 울산대병원이 의대 부속병원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인 서울아산병원과 강릉아산병원 전문의들도 전임교원 자격을 인정받고 있다.
성균관의대는 교원 증가율이 앞에서 언급한 대학보다 낮긴 하지만 역시 부속병원을 두고 있지 않다.
학생 실습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은 사회복지법인, 강북삼성병원과 마산삼성병원은 의료법인이다.
이에 따라 순수하게 사립의대 부속병원이나 특수법인(소위 국립대병원) 형태로 학생 교육을 시키는 의대는 31개 뿐이다.
전임교원이 늘어나는 것을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한국의대학장협의회는 1998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1991년 이전 설립된 32개 의대의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9명이라고 집계했다.
그러면서 의대학장협의회는 “의대 전임교수 확보 현황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만족스럽지 않지만 최근 14년 동안 각 대학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크게 호전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0년대 들어 의대 교원이 크게 증가한 반면 의대 입학정원이 10% 감축된 것을 감안하면 교수 1인당 학생수는 1998년보다 더 줄었고, 이에 따라 학생 교육 여건이 개선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 전임교수 증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순수한 의학 교육 이외의 목적을 위해 ‘교수’라는 신분을 남발하는 경향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의대를 설립하는 게 아니라 실력있는 임상 의사에게 ‘교수’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부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A의대 학장은 “실력 있는 임상의사라면 누구나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희망한다”면서 “그나마 교수직을 보장하기 때문에 지방 병원들이 우수한 전문의를 영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B의대 학장도 이런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좋은 의사를 뽑기 위해서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줘야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 지위는 의대 협력병원에만 요긴하게 쓰이는 게 아니다.
의대 교수는 진료, 연구, 교육이라는 3박자를 두루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일부 의대는 부속병원을 늘리면서 진료 이외에 연구, 교육이 미비하더라도 전임교원 지위를 보장하면서 우수한 교원 유치에 나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C의대 학장은 “연구, 교육을 하는 의사에 한해 전임교원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상당수는 교수직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의대와 연줄이 닿는 병원을 세우기만 하면 ‘교수’를 보장할 수 있게 된 것은 학생 교육병원에 대한 진입장벽이 전무한 탓이다.
대학설립운영규정은 의대는 부속병원을 갖춰야 하며, 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다른 병원에 위탁해 실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습병원 지정 기준이나 전임교원 자격 기준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일부 병원 경영자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의대 신설에 사활을 걸다시피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자력의학원이나 국립암센터와 같이 쟁쟁한 ‘박사’들을 보유한 병원들은 대형 대학병원이 들어설 때마다 영입 대상 1순위로 지목되고 있으며, 경영진들은 인재를 빼앗길까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원자력의학원 관계자는 “사실 의사들은 학자라는 점에서 교수라는 직함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데 우리는 기껏해야 ‘과장’이 전부다”면서 “이런 점 때문에 대기업이 병원 사업에 진출하면서 의대를 낀 게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삼성병원이 만들어질 때 의학원 전문의들이 대거 빠져나갔는데 월급도 많이 주고, 교수직도 준다는데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우리도 교수 지위를 보장하고 학생들을 교육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