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부터 동일성분 의약품을 중복투약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약제비를 환수하는 방안을 실시키로 한데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의료 현실상 환자가 약 처방 내용을 100% 인지하고 처방 변경을 요구하는 등 중복처방에 대한 환자의 자율 관리기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정부가 의약품 처방·지원시스템(DUR시스템)의 전국 확대 시행을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8월 1일을 기해 전면시행에 들어간 '요양기관간 동일성분 중복투약 관리에 관한 기준' 고시와 관련,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앞서 정부는 동일성분 의약품 중복처방 및 투약을 방지하기 위해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중복처방 심사조정을 시행하는 한편, 여러 의료기관을 돌며 동일성분약을 일정 기준 이상 처방받은 환자에 대해서도 약제비 환수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른 환수대상은 동일한 질환으로 3개 이상의 요양기관을 방문해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을 6개월 동안 215일 이상 처방받는 경우로, 최종적으로 약이 조제된 내역을 중심으로 중복여부를 점검하게 된다.
정부는 이 제도의 운영을 통해 중복처방 및 투약 등 약물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료 현실상 제도의 실효를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 스스로 처방내역을 점검하기가 어렵다는 것.
환자가 처방전을 비교해보며 중복처방 여부를 체크한 후 중복처방을 피해줄 것을 의료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면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일반 환자가 처방전을 보고 약의 성분 뿐만 아니라 중복처방 여부까지 파악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이른바 '몰라서 당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병·의원 방문이 상대적으로 잦은 만성질환자, 노인환자들의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복투약 환자로 분류될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DUR시스템의 확대시행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한계가 뻔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밖에 보여지질 않는다"면서 "결국 몇 개월이 지나고나면 이 제도의 보완책으로서 다시 한번 DUR의 확대시행을 공론화하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복지부 또한 제도의 한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 스스로 처방내역을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일단 약제비 환수조치는 다소 유보할 계획"이라면서 "1차적으로 6개월간 제도시행을 통해 1회 위반한 환자들에 대해서는 환수 없이 계도 안내문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때문에 실제 환수는 내년이나 되어야 발생하게 될 것"이라면서 "일단을 계도에 촛점을 맞추고 실제 환수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복지부는 중복처방 및 중복투약 관리를 위한 궁극적인 지향점이 DUR의 확대시행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DUR 시스템이 현 제도의 한계점을 넘어설 수 있는 장기적인 해법이라고 본다"면서 "일단 현재의 과도기적 단계에서 중복투약의 문제를 손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고 보고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