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조직검사 결과를 건내 준 세브란스병원과 재검사를 하지 않고 수술한 서울대병원 모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의사-의사, 병원-병원간의 신뢰를 잃게 만든 사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의대 의료정책실(실장 전범석 교수)은 2일 오후 4시 암연구소 이건희 홀에서 ‘조직검사 슬라이드가 바뀐 유방종양 환자의 배상판결에 대한 법적 의학적 문제’를 주제로 제6차 함춘포럼을 개최한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기문)는 서울대병원에서 유방암 절제술을 받은 K씨가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관련, 지난 8월 판결에서 두 병원과 해당 교수들에게 5천여만원을 환자에게 지급하라는 연대 책임을 물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5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고 K씨는 세브란스병원 K교수로부터 초음파와 조직검사를 받은 후 오른쪽 유방암 진단을 받고, 주변의 권유에 따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했다.
서울대병원 N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넘겨준 조직검사 결과를 검토하고, 유방조영술, 초음파, MRI 등의 검사를 거쳐 유방암 절제수술을 했지만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는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긴 했지만 암세포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후 환자 K씨가 재확인한 결과 세브란스병원이 다른 사람의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환자 K씨는 세브란스병원이 타인의 조직검사 결과를 전달했고, 서울대병원이 멀쩡한 사람에게 유방암 절제수술을 했다며 두 병원을 상대로 1억33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세브란스병원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고, 환자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결과 두 병원과 해당 의료진 모두에 과실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날 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김선욱 변호사(대외법률사무소)는 “고법 판결은 모든 검사의 오진 가능성을 의사에게 책임지도록 한 것”이라며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법률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대병원 박규주(외과) 교수는 “이 사건은 의사-환자 관계가 아닌 의사-의사, 병원-병원간의 관계에서까지 신뢰를 잃게 만든 사건”이라며 “의료계에 관련된 모든 관계에서 신뢰를 상실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의학적으로는 조직검사 결과 없이도 초음파나 MRI상 판단으로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고 환기시켰다.
서울대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다시 해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세브란스병원의 유방암 조직검사 결과가 있는 한 초음파나 MRI 소견 등을 고려해 확진을 위한 절제술이 불가피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정책실 관계자는 “고법 판결은 의료계에 미치게 될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며 “심평원이 중복검사를 삭감하고, 정부도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기 위해 환자들의 검사결과를 공유하는 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과 거꾸로 가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함춘포럼은 이 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되어 있는 상황에서 개최되는 것이어서 향후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