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대학원제도를 설계했던 연대 허갑범 명예교수가 서울의대, 연세의대, 고려의대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이들 의대가 수능 상위권을 선점하려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갑범 명예교수는 14일자 <조선일보> 기고에서 “요즘 최고 고급 두뇌들이 의대로만 쏠린다는 걱정이 많다”면서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깊어지고 있는데도 의료·바이오산업은 그만큼 국부를 늘리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음을 개탄하는 목소리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국내 한 의대의 학장을 역임하면서 의학교육 제도개선을 늘 마음에 두어왔고, 그 일환으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그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최고급 두뇌들이 감기환자나 보고 쌍꺼풀 성형수술이나 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국가적 낭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고급 두뇌의 의대 쏠림현상이 현행 학생선발 제도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분석하고, 개선 방안으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꼽았다.
그는 “자연과학, 생명공학, 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의전원에서 의학교육을 받게 한다면 지식의 융합을 통해 의료·바이오산업을 비롯한 의생명과학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또 그는 “의전원에 의학·이학 박사학위제도(MD-PhD)를 도입하고 창의력이 풍부한 의학자들을 양성, 우리나라 의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의학 발전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의료·바이오산업은 물론 의료관광 산업조차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문제는 의대냐, 의전원이냐를 놓고 10년이 넘게 논란을 거듭해오면서도 서울의대나 연세의대, 고려의대 같은 유수한 의대들이 아직도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정부도 확고한 정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들 대학이 아직도 수능시험 상위권 두뇌들을 선점하려는 미련을 떨치지 못해 의대체제를 선호하고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10대 의료 강국에 들어가려면 연구 중심 대학(의전원), 진료 중심 대학(의대)로 각각 특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미국의 하버드대를 예로 들면 금년 5월 유에스 앤 월드 리포트지의 의학분야 경쟁력 평가에서 연구 부문은 1위를 했지만 진료 부문에서는 15위를 했듯이 '연구 중심 대학=진료 중심 대학'이라는 등식을 과감히 버리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허 명예교수는 정부가 의료·바이오산업 육성책의 일환으로 국내 몇 개 병원을 첨단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해 연 40억~50억원의 재정을 지원하고 있는 것과 연구중심대학을 연계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