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직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의사의 무죄 판결을 바라보는 개원가의 반응이 격양되어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방법원이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원장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한 판결에 대해 “복지부와 심평원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반응이다.
이날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김모 원장에 대한 2심 공판에서 “원심의 결정이 틀렸다고 볼 수 없다. 항소를 기각한다”며 피고 무죄를 확정했다.
앞서 북부지법은 지난 8월 1심 공판에서 “심평원 직원이 임의로 자료제출을 요구한 부분과 관련서류 제출을 36개월로 연장한 것을 거부한 피고인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 개원의는 “심평원 직원이 현장조사를 이유로 진료실로 찾아와 진료를 방해하고 진료기록을 요구, 복사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더구나 자신이 작성한 임의적인 자료제출 요구서를 내밀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마땅히 시정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원장은 “이번 판결은 관행으로 여겨진 복지부와 심평원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있는 결정”라고 말하고 “실사를 경험한 개원의 대다수가 행정처분을 우려해 심평원 직원의 요구를 들어주고 조용히 넘어간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개원의는 “실사를 한번 받고 병원이 망할 수 있는 위기에 처한다는 것은 의료관련 법의 대표적 위법 사례”라며 “검찰 고발 수준의 범죄가 아니라면 실사의 구속력과 과징금을 현실에 맞게 개선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2심에 자신감을 보여 온 복지부는 이번 판결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 일단 판결문을 받아 다각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면서 “검찰과 논의해 대법원으로 갈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다만, “복지부가 근거로 제시한 대법원 판례를 뒤집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제하고 “대법원 판례는 행정소송이고 이번 건은 형사소송에 의한 건보법 위반인 만큼 다르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복지부는 조만간 심평원과 회의를 통해 이번 판결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중견 개원의는 “법원이 실사 자체의 무효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점을 법리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복지부 현 인원으로 실사를 나가는 것이 어려운 만큼 자칫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심평원에 실사권을 부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2007년 8월 서울 K의원에 대한 현지조사 중 심평원 직원이 자신의 명의로 된 자료제출 명령서를 김모 원장에게 전달했고, 김모 원장은 명령서에 응할 수 없다며 자료제출을 거부해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업무정지 1년 및 형사기소되면서 촉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