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최근 의약품 거래 투명화 및 리베이트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제약업계가 비상이 걸렸고, 의료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장 올해 10월부터 의약품을 상한가보다 낮게 구매한 의료기관들은 일정한 인센티브를 부여받지만 리베이트를 수수하다 적발된 의사들은 형사처벌과 함께 면허정지 기간도 확대된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대학병원의 의국 운영 시스템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오랫동안 병원계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되던 '의국 운영비=제약사 후원금'이라는 공식을 깬 대학병원들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병원들이 과감하게 의국에 투자하면서 이러한 악습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보건복지가족부가 리베이트 쌍벌죄 적용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이러한 관행에 칼을 대기 시작해 의국 문화 개선의 단초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대형병원 투명성 고삐…의국비, 학술비 전폭 지원
삼성서울병원이 모범 사례의 하나로 뽑힌다.
타 대학병원의 수십배에 달하는 의국비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의국 운영을 위해 리베이트를 받는 악습을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성의료원 관계자는 18일 "'촌지 없는 병원, 리베이트 없는 병원'은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할 때부터 강조했던 모토"라며 "타 대학병원보다 의국비가 많은 것은 진료와 연구, 교육 이외의 부분에 신경쓰지 말라는 병원의 배려"라고 못 박았다.
그렇다면 과연 삼성서울병원은 의국에 얼마나 지원하고 있을까.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조교수 이상 모든 전임교원에게 법인카드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의국 운영이나 연구에 필요할 경우 제약사에게 기대지 말고 카드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서울병원 의료진들은 학회 참석 등 출장부터 도서구입비, 실험시약을 사는 것까지 모두 법인카드를 이용한다.
또한 의국에 필요한 비품도 모두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사무보조원 등의 월급도 병원에서 보전해준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인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전공의들에게도 이같은 혜택이 제공된다.
전공의들이 필요한 비품과 도서비용, 학회 참석 등에 필요한 경비를 청구할 경우 간단한 신청서만 제출하면 모두 병원이 지원해준다.
타 대학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의국비를 마련해 전공의를 지원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삼성서울병원의 의국비는 얼마나 될까? 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많게는 1년에 1억원 수준이다. 일반 대학병원들 입장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런만큼 일정부분 효과를 보고 있다. 교수들의 호응도 높고 진료 등 고유업무영역에 집중해 효율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전공의들도 잡무에서 벗어나 수련에 집중할 수 있어 호응이 높다.
삼성서울병원 한 임상과장은 "병원의 이러한 배려들이 리베이트, 촌지를 거부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며 "병원에서 이렇게 까지 배려해주는데 개인적으로 뭔가 받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그만큼 양심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시스템이 잘 정착되다보니 체계적인 업무분담과 교육, 연구가 가능해졌다"며 "이러한 시스템을 선호해 삼성으로 자리를 옮기는 교수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도 삼성서울병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의국비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교수들이 제약사의 후원을 받지 않고도 의국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임상 및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도서구입비는 물론, 학술행사를 포함한 행사비 전액을 지원하고 교수 등 직원수에 비례해 의국 운영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해외 학회 참석비를 전액 지원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연 2차례에 한해 해외학회를 나갈 경우 항공료를 포함해 숙박비 등 체제비 전액을 병원이 부담해준다.
특히 학회에 연자로 발표하지 않고, 단순히 참가하더라도 학술 역량 강화를 위해 비용을 모두 지원하고 있어 스텝들의 호응이 매우 높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제약사나 의료기기업체들의 후원을 받지 말고 떳떳하게 진료에 임하라는 게 병원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병원 모두 이러한 지원책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왜곡된 건강보험 수가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이 의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위 '잘나가는 병원이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일부 대학병원 보직자들과 교수들도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의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고 것도 사실이다.
A대학병원의 임상과장은 "솔직히 대학병원 교수는 명예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 한다"며 "의국을 운영하는 책임을 맡고 있으니 현실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병원에서 이러한 비용을 모두 지원해준다면 굳이 제약사에 손을 내밀 필요도 없고 받고 싶지도 않다"며 "하지만 그만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병원이 국내에 몇곳이나 되겠느냐"고 털어놨다.
결국 재단과 병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현재 국내 의료환경 속에서는 방법이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B대학병원 교수는 "의료기관은 어짜피 비영리법인"이라며 "병원이 일정부분 수익을 내고 이를 연구와 교육에 재투자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한 선순환 구조"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하지만 현재 병원의 대부분이 진료비 적자를 부대시설 수입에서 보존하는 기형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런 선순환이 가능하겠냐"며 "아산, 삼성이 가고 있는 보편타당하고 당연한 길을 왜 많은 교수들이 부러워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